[기고] 韓日 긴장해소, 양국 엘리트들이 나서야

이승혁 토론토대학교 정치학 박사
최근 한일관계가 사상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긴장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한국과 일본 사회의 대중들이 탈냉전 이후 상대방 국가가 경험해온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중대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양국의 현재 외교정책 기조와 긴밀하게 연관된 이런 변화들이 양국 관계의 저변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극단적이지 않은 시민들까지도 상대 나라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상호 불신이 팽배해졌다. 이러한 양국 관계의 간과되기 쉬운 측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일관계 전문가들 중에는 현재 최악으로 치닫는 양국 관계의 기원을 1990년대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정치권의 진정한 '우경화'와 '역사 수정주의'가 그때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은 북한과 중국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시작하였다. 최근의 양국 관계 악화가 이전의 악화 시기와 가장 다른 점은 정부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 시민사회 사이에서도 상대 나라에 대한 감정 악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큰 우려를 자아낸다. 또한 과거에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주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다수의 여론 조사와 방송 매체에서 보이듯 일본 사회와 미디어에서도 격앙된 감정이 표출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정치적인 해결책은 요원하다. 양국 관계는 항상 고도로 주목받으며 정치화되어있고 여론에 의하여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현안인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에 관하여 양국 정부 차원에서 추가적 협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양국의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존재하는 교착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미봉책이 될 뿐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어떠한 정부간 새로운 진전이나 합의도 진솔한 양국 관계 발전으로 연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한일 양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냉소를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정부간 어떠한 노력도, 양국 관계의 어떠한 변화도, 지금대로라면 한일 사회가 이를 계속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결국 위에서 언급한 상호간 오해만 더 키우는 재료를 제공할 뿐이다.

현재로서는 평범하고 극단적이지 않은 양국 시민들이 상대 국가에 느끼는 좌절감과 오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성격을 갖는지에 대하여 상호 인식을 넓히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지원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양국 엘리트들의 어떠한 역할이든 환영받을 만한 것이며, 이 노력을 통해서만이 미래의 더 나은 양국 관계를 위한 탄탄한 사회적 기반을 다시금 마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본다.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양국 정부가 오랫동안 상대 나라에 있는 자국의 '친구', 즉 '우호 세력'을 매우 협소한 개념으로 정의해 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일본의 '좌파 평화주의자'들만을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주류 정치인들은 한국 내에서 진보적인 입장과 대립하는 엘리트들이나 반공이라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계속 추종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고 선호한다. 이런 세력들은 탈냉전 후 양국 국내 정치에서 과거에 비해 주도적인 힘을 잃었지만, 양국 정부는 아직도 자신들이 선호하는 우호 세력의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이러한 한정된 가치관은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상대 정부가 자국 내 특정 정치세력만을 지원한다고 불필요하게 오해하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 이 같은 식으로 양국 정부는 대다수 극단적이지 않은 상대방 국가의 국민들을, 자국에게 잠재적으로 더 우호적이고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들을 포용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