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이현석 대한흉부외과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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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사람은 인구 10만명 당 24.3명이었지만 이 중 남자는 34.9명으로 13.8명인 여자보다 높았으며 특히 50세 이후에서는 남자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무려 3.5배나 높았다. 그리고 자살 원인은 정신적 문제(36.2%), 경제생활문제(23.4%), 육체적 질병 문제(21.3%) 및 가정문제,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 남녀문제, 사별문제, 학대 또는 폭력문제로 밝혀져서 자살의 원인이 우울증과 무관하지 않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2009년에서 2013년까지 건강보험심사원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여성이 211만 명인데 반해 남성은 99만 명에 불과했다. 이는 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남자들이 적어서가 아니라 진료실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남자는 정신적으로 나약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통스럽거나 자살충동이 생기는 상황에 놓여도 술이나 사회적 고립, 격렬한 스포츠로 이를 해소하려고 하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설령 병원에 가도 두려움, 불안, 우울감과 같은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상담하기 보다는 통증, 복통, 성욕 감퇴 같은 육체적인 증상만을 얘기하며 마음의 고통은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흔히 말하는 '남자다운 남자'라는 전통적인 남성 역할이 깊이 내면화된 남성일수록 더 우울한 상태에서 과음을 하거나 공격적 태도를 보이며 심할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40대까지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다가 50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갑자기 은퇴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면서 가족부양에 대한 의무와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이 본격화된다. 그리고 건강도 과거 같지 않으며 일에만 몰두하다가 가정을 소홀히 한 결과 집에서도 소외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베이비 부머로 불리는 세대들은 학창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고 가난 속에서 자라 집안을 일으켜 세웠으며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속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탈권위주의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나, 정작 본인의 노후는 준비되지 않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꼰대'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면서 쉽게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의 축구스타 엥케는 우울증으로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했고 포춘지 선정 500 대기업 중 하나를 경영하던 부르기에레스는 병가(病暇)를 내면서 "우울증 증상이 가장 심했던 때에는 내가 없어져야 세상이 나아진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성공에 집착하면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 경우이다. 누구나 자기가 감당하기 버거운 스트레스를 받으면 쉽게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울증에 걸리면 침묵을 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경우에 가족들과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인정하면서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특히 삶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한 부분이나 열심히 산 부분에 대해 스스로의 노력을 존중하고 격려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울증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게 된다. 본인의 고민이 무엇이며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을 하도록 노력하여 생활 습관이 바뀌면 이것이 다시 우울증의 극복에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은 정신적인 방어능력을 취약하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일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으면 좋지만 취업이 여의치 않다면 자기의 경험을 살려 자원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실제로 미국에서 은퇴 후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이 7년 정도 더 살고 질병도 덜 앓는다는 보고도 있다.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인적 자원을 방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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