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까지 버티기 힘들 것 같고, 희망퇴직자에 제시한 조건도 좋아 이번 기회에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준비했던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
연초 여의도 증권가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한파로 약 380여명의 증권맨들이 짐을 쌌다. 최근 5년 동안에는 무려 4000명 이상이 여의도를 떠났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이 보편화됨에 따라 영업지점이 가파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증권사들 몸집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체 증권사 56곳의 임직원 수는 지난 2014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4만명 벽이 무너진 이후 이날 현재까지 3만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사 전체 임직원 수는 △2013년 4만241명 △2014년 3만6613명 △2015년 3만6161명 △2016년 3만8423명 △2017년 3만5889명을 기록했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전체 증권사 임직원 수는 3만6220명으로 집계됐다. 아직 사업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아 연간 기준으로 작년 임직원 수는 알 수 없지만 예년과 비슷하거나 규모를 더욱 축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래에셋대우,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주요 증권사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합병한 지 3년만에 29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60여명, 33명의 희망퇴직자를 받았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 5년 동안 전체 증권사 임직원 수는 4000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투자업계는 MTS와 HTS 사용이 확산됨에 따라 인원감축 현상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영업지점을 찾는 고객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증권사 지점은 2008년 1863개에서 작년 3분기 1108개로 10년동안 40.5%(755개)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영업이 늘어나는 데다 로보어드바이저나 인공지능(AI)등이 사람이 하던 업무를 대체하면서 인원감축은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위적 구조조정 칼바람이 거셌던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선 자발적으로 퇴사를 결정한 이들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데다 영업지점 감소, 증시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증권사의 경우 보험이나 은행 등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근속연수도 비교적 짧다. 중소형 증권사보다 상황이 그나마 나은 대형 증권사 5곳(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삼성·NH투자·KB증권)의 작년 3분기 말 평균 근속연수는 11.8년으로 10년을 겨우 넘어선다.
희망퇴직자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점 또한 한목한다.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일반직 기준으로 24개월치 급여에 재취업 교육비 명목으로 5년간의 학자금 또는 위로금 3000만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점 창구에서 일하는 업무직도 24개월치 급여와 재취업 교육비를 지원키로했다. 일반직은 희망퇴직 외에 주식 상담역이나 자산관리(WM) 전문직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각각 18·12개월치 급여에 학자금 또는 3000만원을 받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면 신청자가 크게 몰려든다"며 "이번 기회로 다른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계획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