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법률에 예정된 시한을 훌쩍 넘겨서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24조에 따르면 정개특위는 이미 작년 10월 5일에 선거제도를 마련했어야 했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뒤늦게 구성되었다곤 하나 개점휴업중인 상태다. 그동안 시민사회와 학계는 득표에 따라 공정하게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로의 개혁을 요구해왔으나 거대양당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계산속 때문에 미온적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대안은 없는가?
선거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약간의 변화만으로 승자가 바뀔 수 있고 정당별 의석 분포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의 지역구에서 1위한 후보를 대표로 선출하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single member district with plurality)는 상대적으로 적은 표로도 당선자를 낼 수 있기에 전국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거대 정당에게 득표 대비 많은 의석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다. 심지어 과반 미만의 득표로 과반을 상회하는 의석을 부여하는 제조된 과반(manufactured majority)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비례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부족한 군소정당이 당선자를 배출하기 어렵기에 대표성도 감소한다. 아울러 사표도 많이 발생해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적절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그러나 원내 정당수를 줄이고 정치 안정을 기할 수 있어 정파 난립으로 정치 불안이 심한 신생 민주주의국가에 권고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이 의석을 배분받기에 제도에 의한 득표 대비 의석 왜곡 현상이 없고 높은 비례성을 자랑한다. 군소정당도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어 대표성도 향상된다. 그러나 대표 지역이 상대적으로 넓어 유권자들이 접촉하기가 쉽지 않고 원내 정당의 수가 늘어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교착이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원내 정당의 난립을 막기 위해 일정한 정당득표율을 초과하지 않을 경우 의석을 배분하지 않는 봉쇄조항(threshold)을 높게 두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위의 두 제도를 혼합하여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따로 선출하는 혼합형 다수제(mixed member majoritarian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을 두고 있는데, 비례대표 의석이 너무 적어 득표 대비 의석의 불균형이 심하고 군소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어려워 비례성과 대표성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비례대표 정당득표율로 총의석수를 정하고 지역구 당선자 외의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충원하는 혼합형 비례제(mixed member proportional system)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부르는 제도는 바로 혼합형 비례제이다.
그동안 시민사회 및 학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채택을 요구해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분포를 2:1로 구분하고 혼합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이를 위해 의원정수를 360석까지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도 19대 대선에서 혼합형 비례제를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유불리 계산속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급기야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고, 여야 5당은 지난해 12월 15일 5당합의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내용은 의원정수 10% 확대를 포함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개특위는 현재 3개의 동상이몽으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선거제도를 둘러싼 주요 갈등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혼합형 비례제를 도입하기 위해선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행 의원정수로 (준)혼합형 비례제를 시행하려면 지역구 의석을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난망하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이 59.9%에 달했다. 후자의 경우도 선거법 개정의 당사자인 현역 의원들의 저항이 불을 보듯 뻔한 상태다.
결국 의원정수 확대나 지역구 수 축소를 피하면서 혼합형 비례제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한 가지 대안으로 영국의 런던, 스코틀랜드, 웨일즈 의회가 실행하고 있는 영국식 의석추가형 비례제(additional member system)를 들 수 있다.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정당득표수를 기준으로 비례의석을 동트(d'Hondt)식으로 할당해 나가는 제도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각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결정되면, 각 정당의 비례대표 정당득표수를 '지역구당선자수+1'로 나눈다[=정당득표수/(지역구의석수+1)]. 이때 '1'을 더하는 이유는 배당될 추가의석을 의미하기도 하거니와 지역구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정당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 정당의 1석당 평균 비례대표 정당득표수가 나온다. 이 경우 비례의석 1석을 평균득표수가 가장 많은 정당에 배분한다. 다음은 새로 조정된 의석수를 기준으로 다시 평균득표수를 계산해 가장 많은 정당에 비례 1석을 추가로 배분한다. 이후 계산을 반복하며 비례의석을 끝까지 배분해나가면 각 정당의 총의석수가 결정된다.
이 제도는 의원정수를 확대하지 않아도 돼 국민들의 원성을 피할 수 있고, 지역구 수를 줄이지 않아도 돼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을 침범하지 않으며, 심지어 적은 수의 비례의석을 가지고도 비례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 군소정당들도 만족할만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의회선거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 득표 대 의석의 불균형에 있었기에 이를 시정하는 그 어떤 노력도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현재 정개특위는 거대여당의 유불리 계산,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불신, 그리고 현역 지역구 의원의 기득권이라는 복잡한 요인들이 얽히며 교착에 빠져있다. 그러나 1인 1표의 헌법적 주권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국민적 지지에 걸맞게 의석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이는 공고화 과정에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층 더 성숙시킬 것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글에 제안된 영국식 의석추가형 비례제가 신중하게 논의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