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사진)의 유품 등 기증받은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외교자료 8점을 13일 공개했다.
약 130년만에 선보인 자료들은 국외소재문화재단이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을 복원하면서 고증 사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동안 이상재의 종손인 이상구(74)씨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간직하다가 이번에 기증했다.
충남 서천 출신인 이상재 선생은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돼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 D.C.에 들어갔다가 같은 해 11월 박정양 공사와 함께 다시 귀국할 때까지 현지에서 주미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들은 이 시기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증 자료는 문헌자료 5점과 사진자료 3점이다. 특히,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과 '미국서간(美國書簡)'은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것들이다. 당시 미국과 협상 중이던 중요 현안업무와 공사관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현존 유일의 외교자료로 평가된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들의 '업무편람' 성격에 해당한다. 1883년 미국 아더 대통령이 초대 주한공사 푸트를 조선에 파견하며 고종에게 전달한 외교문서를 비롯해 박정양 공사가 미국정부 또는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들, 주미공사관을 통해 추진했던 조선왕조와 미국정부 간 각종 현안사업과 관련된 문서들, 업무수행에 필요한 각종 비망록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시 조·미 간 현안사업 중 뉴욕 법관 등이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설치 등 3건을 추진하려고 제안한 규약과 약정서 초안이 수록돼 있다. 이 중 그들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인 '철도약장(鐵道約章)' 초안도 함께 있다. 규약은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로 시작하는데, 조선과 미국 간 철도 부설 논의가 경인선이 완공된 1899년보다 10여 년 앞선 시점에도 이뤄졌음을 알려준다.
미국서간은 이상재가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한 편지 38통을 묶은 사료다. 서간은 대부분 집안일에 관한 내용이지만, 공사관 운영 실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예컨대 "미국 풍속은 민(民)을 주권으로 삼는다. 소위 군주는 4년마다 교체되고, 인민이 회의해서 차출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권한이 없고, 오로지 민의를 주로 삼을 뿐이다"라거나 "공관은 매년 임대료를 780원씩으로 정하고 입주하였다. 관내의 일용 집기는 1천 5백여 원으로 구입해두었다. 조·석반은 관내에서 지어 먹는다"고 적었다.
또 "소위 미국 물정은 이곳에 온 이후 언어와 문자가 모두 통하지 않아서 듣거나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철호 동국대 교수는 "이번 유품은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미활동을 생생하게 알려준다"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사관원들이 직접 기록한 자료가 발굴돼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