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고용과 거시경제정책의 역할' 보고서
"통화정책으로 고용 안정까지 고려 못해"
금융안정 목표에도 버거워

한국은행이 정책 목표에 '고용 안정'을 추가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목표인 '일자리 창출'을 내걸고 나서면서 한은에도 고용 안정을 목표로 삼을 것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박성호 한은 연구위원은 27일 '고용과 거시경제정책의 역할: 고찰과 제언' 보고서에서 "한은이 보유한 정책수단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안정에 이어 고용안정까지 추가되면 정책 목표가 상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경제학은 거시정책으로 경기를 안정시키면 고용 안정도 뒤따르기 때문에 고용 안정을 위한 별도의 정책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용 없는 성장이 발견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회복이 지연되면서 기존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 부진이 계속되자 1970년 도입 이후 사문화된 통화정책의 완전 고용 목표를 부활시켜 물가와 고용 안정이라는 이중책무 통화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확장적 통화정책과 엔화 평가절하로 경기를 부양하는 아베노빅스를 실시해 실업률 감소와 고용률 상승 등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이 고용까지 고려할 수 없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급격한 자본유출을 염두해야 하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로 고용을 위해 재정정책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더라도 재정건전성과 대외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1년 금융안정이 한은 통화정책 목표에 포함된 상황에서 고용안정까지 추가되면 정책 목표가 상충할 수 있다"며 "한은이 보유한 정책 수단은 많지 않다. 고용 안정 목표의 추가 여부는 향후 많은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실상 한은에 고용 안정을 추가할 것을 요구한 정치권에 대한 거부의 표시다. 지난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은의 목적에 '고용 확대'를 추가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7월 한은 노동조합 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박영선·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은의 역할도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맞게 모색돼야 한다"며 고용 안정을 한은 목표에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한은이 고용 안정을 목표에 추가하게 되면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은 갈피를 잃을 수 있다. 고용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과 금융불균형 해소를 위한 금리 인상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고용 안정을 목적 사항에 추가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한은의 독립성 훼손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이미 한은은 금융안정이라는 목표에도 버거워하고 있다. 통화정책만으로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한은의 목적 사항에 금융안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계 부채 속도 조절을 못하는 책임을 한은에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은 물론 국회에서도 금융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이미 중앙은행도 금융안정을 기본적으로 관리해와 금융안정을 목적 사항에 추가했다"며 "하지만 정책 기능이 기준금리 조절밖에 없는 중앙은행이 모든 목표를 달성하기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애기자 euna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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