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7개월여 만에 현 정부 경제정책이 분배에서 성장으로 방향을 트는 모습이다. 정부는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최저임금과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의 보완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그렇다면 사실상 임금인상을 통한 분배정책에 다름 아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부른 반(反)시장적 경제 악화를 정부가 인정한 것일까.
이번 발표로 본 내년 경제정책방향은 크게 보면 기업 투자의 활성화다. 이를 통해 경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으로, 모든 공공부문의 민간투자허용은 물론 그동안 인허가 절차에 묶여 있던 대형 기업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규제를 상당부분 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다. 현대차 GBC 투자는 2014년 옛 한국전력 삼성동 부지에 신사옥 건설계획을 발표한 후 4년이나 국토부와 서울시 인허가에 막혀 있었던 사안이다. 투자 규모만 3조7000억 원이다.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된 수도권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역시 투자 확대와 함께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한 방향이다.
둘 다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안정과 인구과밀 억제의 명분으로 막아왔던 것으로, 다른 기업의 유사 사례로 확대될 경우 기업 투자를 유인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자동차와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제조업 활력회복과 혁신전략도 연이어 발표했다.
이처럼 문 정부가 이 시점에서 기업을 비롯한 민간 투자 확대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제위기 쓰나미가 내년 곧 닥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경기 부양을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내년 우리 경제 전망은 좋지 않다. 투자와 생산, 고용과 소비 등 경제성장을 위한 자표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제 둔화와 수출 환경 악화까지 겹치면 우리 경제는 금융위기 때 이상의 큰 위기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기에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의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보다 선명한 정책 메시지를 기업과 시장에 줘야 한다. 규제혁파만 해도 그렇다. 수도권 공장신설 등이 특화 클러스터라는 대중소 상생모델로 수도권 총량규제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규제혁파를 위해서는 갈 길이 한참 멀다. 카 셰어링과 숙박공유 분야에서 일부 규제가 완화됐지만, 사회적 갈등이 큰 카풀 서비스나 의사와 환자간 원격진료 등은 모두 제외됐다. 특히 근원적인 기업 환경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노동개혁에 대한 방향 제시가 없다. 산업 구조개선과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상생형 지역 일자리 발굴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원론적 선언 수준이다.
기업 등 민간 투자는 확실한 규제혁파와 세제 개혁을 동반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자발적으로 활기가 돈다. 정부가 몇몇 대형 기업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기업이 돈을 싸들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못지않게 상법개정과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등 공정경제 프레임의 급격한 추진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공정거래를 경쟁제한의 관점이 아닌 경제력 집중으로 해석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대로 뛰어 놀 수 있는 자리를 깔아줘야 투자가 살아나고 이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정부 정책메시지도 명확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하겠다고 하는 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하겠다는 강행방침을 밝혔다. 이래서는 시장이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 경제 활력은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기업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책 메시지가 일관성 있고 선명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과 기업이 반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