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단계부터 신규선정 못해 담당 중기부·산업부 엇박자에 예비타당성 조사 여부 불투명 개별사업 전략도 차질 불가피
연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글로벌 히든챔피언을 육성하는 정부 간판 기업R&D 지원사업인 '월드클래스300(WC300)'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올해 1단계 사업이 끝나 내년부터 2단계를 추진해야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에 탈락해 내년부터 신규 선정을 못하게 됐다. 특히 사업을 공동 주관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엇박자를 내면서 예비타당성 조사 재도전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예타 탈락 후 사업 오리무중=중기부와 산업부는 WC300 2단계 사업을 공동 기획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신청했지만 지난 8월 탈락했다. 자연히 내년 신규 예산 확보도 불발됐다.
당초 두 부처는 내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30개, 총 250개 기업을 선정해 총 1조4400억원(정부 7900억, 민간 6500억원)을 투입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예타 과정에서 WC300과 중기부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사업의 성격이 비슷하다고 지적됐다. 글로벌 강소기업 사업까지 합친 사업을 기획해 오라는 주문을 받았다. 글로벌 강소기업 사업은 수출 중소기업을 발굴해 해외마케팅·R&D·인력·금융·지식재산 등을 4년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지원대상은 수출액 500만달러 이상인 중소기업이다.
예타 탈락 이후 중기부와 산업부 간 공조 움직임도 실종됐다. 예타에 6개월 정도가 걸리는 만큼 2020년 사업예산을 확보하려면 내년초 예타를 재신청해야 하는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기업R&D 분야 한 전문가는 "예타 탈락 시 지적사항을 고쳐오면 통과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후 중기부는 무대응, 산업부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면서 "산업부가 별도 사업을 기획하겠다는 기조를 보이면서 두 부처간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중기부가 최근 사업지속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부처간 논의가 안 되고 있다"면서 "이대로라면 WC300이라는 브랜드가 사라질 수도 있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혁신성장 강조하면서 현장은 엇박자= 두 부처가 별도 사업을 추진하면 처음부터 다시 기획해 예타를 거쳐야 한다. 한 부처가 브랜드를 가져가고 다른 부처는 신규 사업을 하더라도 사업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예타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부가 브랜드를 가져가 중견기업 지원사업으로 특화하더라도 중기부와의 협상조정이 필요한데 그런 움직임이 없다"면서 "정부가 대기업 대신 중소·중견기업을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육성하겠다면서 부처간 신경전으로 엇박자를 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예타 재도전을 위해 사업기획 보완 용역과제에 착수했지만 두 부처에서 명확한 그림을 주지 않다 보니 진척이 안 되고 있다.
관련 업체 관계자는 "두 부처가 단독 추진 여부를 검토 중인 단계"라면서 "산업부는 중견기업 대표 사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WC300을 버리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중기부는 전체 중기R&D 지원사업 포트폴리오 개편을 추진 중인데, 전체 청사진이 늦어지다 보니 WC300 등 개별사업 전략도 차질을 빚고 있다.
한 전문가는 "WC300은 국내 기업R&D 지원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정부가 빨리 방향을 잡아서 기업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월드클래스300이란=될성부른 기업을 선정해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R&D와 금융·보증·지식재산권·인력·해외마케팅 등을 패키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해 올해까지 총 300개사 선정을 마무리했다.
기업R&D 지원 최상위 단계 사업인 만큼 선정기준도 까다롭다. 매출 400억~1조원 중소·중견기업 중 3년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이 2% 이상이거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15% 이상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혁신형기업의 경우 수출이 전체 매출의 10% 이상이고 최근 3년간 매출 대비 R&D 투자비율이 4% 이상이 대상이다. 글로벌전문기업 트랙도 둬서, 최근 3년 직수출액 2000만~1억달러 이상을 경험한 기업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선정 기업 중 평가를 통해 최대 5년, 연 15억원 내에서 자유공모 방식으로 R&D를 지원한다. 올해 R&D 지원예산은 약 1100억원이다.
2011년 190억원 예산을 시작으로 작년 1311억원 등 7년간 총 5138억원이 투입됐다. 특히 선정된 기업들은 연평균 두자릿수 R&D 증가율과 수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매년 고용과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대상 기업 중 50곳 이상이 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안에 포함되는 등 글로벌 챔피언 기업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