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개혁개방이 40돌을 맞았다. 지난 4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무려 155배 성장했고 8억 명이 넘는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모두 '도광양회'(자신을 감춰 실력을 키운다) 인고의 결과다.
그러나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등장과 함께 '중국굴기'(중국이 우뚝서다)를 내세우며 중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은 드러내놓고 IT(정보통신기술)강국을 지향하는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허락해도 '세계의 머리' 중국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태도다.
과연 중국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2019년 최대의 화두다.
△'누구든 먼저 잘 살아보자' = 중국 개혁개방은 덩샤오핑이 설계했고, 추진했다. 1978년 12월 18일,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 74세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역사를 바꾸는 회의를 주재한다. 바로 중국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1기 3중전회)다. 중국은 그해 12월 22일 이 회의를 통해 개혁개방 노선을 공표하고 실행한다. 이 정책으로 중국은 무역과 외국인 투자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1978년 농가 생산 책임제를 도입해 집단 경작체제를 가족 단위로 전환했다. 덩샤오핑은 11기 3중전회 1개월 후인 1979년 1월 중국 역대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났다.
덩샤오핑은 1980년 광둥성의 선전을 비롯해 주하이, 산터우와 푸젠성 샤먼 등 4곳을 경제특구로 처음 지정했다. 대외무역 발전과 외자 유치를 위한 시범구였다. '누구든 먼저 잘 살아보자'가 구호의 실현이었다.
△'남순강화'와 '두개의 백년 목표' = 개혁개방 정책은 1992년 덩샤오핑의 이른바 '남순강화'로 전기를 맞았다. 톈안먼(천안문) 사건 이후 개혁개방 정책의 동력이 약해지자 덩샤오핑은 35일간 중국 남부 주요 지역을 돌면서 시장 개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90년대에는 현대적인 세금 제도와 기업 개혁, 정책 은행과 상업 은행의 분리 등이 이뤄졌으며 금리 자유화도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4년 사유재산권 보호 헌법 명시 등은 중국 내부의 가장 중요한 변화의 분수령이 된다. 1997년 제 15차 당대회에서 등장하는 게 바로 '두개 백년의 분투 목표'다. 1997년 2월 덩샤오핑의 사망 직후 나온 중국 개혁개방의 결정판이다. 두 개의 백년이란 공산당 성립 100주년(2021년)과 중국국가 설립 100주년(2049년)에 개혁개방을 통해 첫 번째 100주년에 빈민이 없는 중산층 이상의 국가가 되고, 두 번째 100주년에는 전면적인 부유 문명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다.
△'중국굴기'와 도전 = 개혁개방의 성과는 놀라웠다. 가히 '중국의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중국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광둥성 선전은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될 때 인구 3만명의 어촌이었지만 이제 상주인구가 1250만명이 넘는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다른 3개 도시와 함께 어엿한 중국의 1선도시가 됐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차지하는 비중은 1978년 1.8%에 불과했지만 2017년 18.2%로 높아졌다. '중국이 재채기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중국은 1978년부터 연평균 9.5%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의 비중은 1978년 1.8%에서 2017년 15.2%로 늘어났다. 구매력을 고려하면 중국 경제 규모는 2014년에 이미 미국을 넘어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바 있다.
드디어 3년 뒤인 2021년 중국 당국은 개혁개방의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시기가 된다. 그러나 짧은 시간을 남겨두고 도전도 만만치 않다. 당장 미국의 압박은 중국이 계획했던 IT 굴기도 포기해야할 정도다. 이에 일각에서는 시진핑 주석 집권이래 "너무 빠르게 도광양회를 포기하고 발톱을 드러낸 탓"이라는 질책도 나오고 있다. 과연 시진핑 주석의 2019년 선택은 무엇일까?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