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교육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야기이다. 초등학생 두 그룹을 대상으로 한 그룹에게는 한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꼼짝하지 말고 주어진 80개의 문제를 풀게 했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같은 시간 동안 동일한 문제를 놓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풀어도 되고 마음껏 교실을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했다. 결과는 강제로 문제를 풀게 한 첫 번째 그룹의 아이들은 문제가 어렵고 그 시간이 지루했다고 느낀 반면, 자유롭게 문제를 풀게 한 두 번째 그룹의 아이들은 문제가 쉽고 그 시간도 재미있었다고 느꼈다. 다큐멘터리는 교육방식의 변화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지만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R&D 역할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과학기술 역량을 키워온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ICT분야에서 모든 가정마다 전화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1986년 전자식교환기를 개발한 것과 모든 국민이 휴대전화를 필수품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1995년 CDMA 이동통신기술을 개발한 것은 우리나라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현재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선진국에 뒤처져 있는 정보통신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 선진국이 이미 달성해 놓은 기술규격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연구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에는 그 목표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기업은 혁신을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다시 돈을 벌고 있다. 시장이 없어 기피 대상이었던 인공지능 기술은 최고의 혁신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은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이라고만 알려지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만들면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혁신기술들이 전 산업분야에 융합되면서 시장을 흔들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시장에서 다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글로벌 기업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시장을 수십 년 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아직도 빠르게 뒤쫓고 있는 형편이다. 시장 선도자(First Mover)로 변해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여유가 아직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슈화되지 않았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경제성 논리로 거부되기 십상이다. R&D 현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하는 연구과제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혁신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R&D의 역할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연구자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순간 바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또한 연구자가 오랫동안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들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문제를 풀 때 재미를 느끼고 성적도 더 좋았다. 전문가는 자율과 낙관의 힘을 얘기한다. 낙관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연구에 재미를 느끼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한 걸음 나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연구 과제를 맡기는 것은 아이들에게 강제로 문제를 풀게 하는 것과 같다. 혁신을 만드는 R&D를 위해서는 연구원들의 자율적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언젠가 혁신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사심 없이 믿고 지지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