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과
집권여당의 대표가 지난달 25일 열린 당원 토론회에서 '개혁민주세력'이 20년 이상 집권해야 한다고 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정당의 지도자이든 장기 집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연히 할 수 있으며 또 정당들은 국가전략과 비전을 제시하고 정권 장악의 의지를 표출하곤 한다. 그러나 이번 장기 집권론의 제기가 과연 시기적으로 타당한가 그리고 자신들만이 '유일한 세력'이라는 독선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을 교체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조선시대의 세도정치 세력이 친일세력과 반공세력으로 진화하면서 한국의 기득권 주도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한 구체제와 낡은 질서를 교체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조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기득권층과 그 특혜 타파 주장과도 같은 맥락에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현 여권의 주된 정치 목표는 정권 장악의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의 기본 구조를 전환시키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한 20년은 집권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선진 사회와는 달리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사회적 이동성이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한 구조적 결함 때문에 그동안 정치적 갈등과 분열 그리고 배제의 정치가 극도에 달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근본적 사회개혁이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적폐 현상은 만연되었고 또 그에 대한 불만이 폭발되었던 것이 촛불시위였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장기집권의 사유와 적폐청산이 사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사람과 제도 두 측면에서 함께 이뤄져야 완성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적폐청산은 지나치게 전 집권인사들에게 집중됨으로써 과거 정권에 대한 불만을 배출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국 적폐청산 노력은 정치적 보복 이외의 새로운 질서 확립의 이미지를 상실하고 있다. 남의 과오를 파헤치는 수준을 넘어 정책과 제도적 차원에서 혁신적 개혁이 일어나 적폐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정농단을 방치하기 위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을 탈피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 경제적 사회적 부조리, 부패 행위 개선을 위한 사회경제정책 등이 가시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제도적 개혁과 경제 활성화의 대안 없이 집권 20년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가에 대한 비전과 철학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 할 전략과 정책들의 제시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정당한 집권 세력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국정 운영의 성과에 기초하지 않은 사람중심의 집권 주장은 결국 국민을 분열과 대립의 상태로 몰고 갈 뿐이다.

현재의 정부와 집권여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경제이다. 소득주도성장이든 기업주도성장이든 국민은 위기 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경제에 관한 정부의 대안을 갈망하면서 인내심을 상실해 가고 있다. 장기 집권론과 주류세력 교체론은 경제생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포용국가'론을 내세우고 있는 현 정부는 마땅히 '사람'을 포용해야 하고 기득권층과 서민층,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현 시대에 장기집권을 통해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사회가 그러한 혁명적 전환의 기회를 잃었지만 나름대로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여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에 오히려 혁명적인 변화 발전을 달성했다. 이제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추는 일이고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합리성을 증대시키는 제도적 개혁인 것이다. 고성장의 시대를 지나 저성장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국민들을 치유하는 정책과 제도 정립에 힘써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