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프랑스 파리의 중심부에서 남동쪽 외곽 방향에 에펠탑을 가로로 눕혀 놓은 듯한 크기의 건물 한 채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로 친다면 수색역이나 천호역 쯤 돼 보이는 곳에 남산 타워 만한 건물을 눕혀 놓은 셈이다.

이 건물은 천 여 개의 창업기업이 입주한 스타시옹 에프(station F)이다. 벤처투자자 자비에르 니엘(Xavier Niel)이 설립하였으며, '라 프렌치 테크'라는 프랑스 창업기업 육성 정책의 상징이다. 세계 최대의 창업 캠퍼스임을 자랑한다.

이 건물의 전신은 파리의 철도차량 기지이다. 지금도 인근의 풍경은 세련된 도심 건물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옆으로는 지하철 고가 철로가 지나가고 주변에는 평범한 직사각형 건물뿐이다. 한층 눈길을 끄는 것은 스타시옹 에프 옆에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 중인 또 하나의 건물이다. 이 곳에 입주하는 창업자들을 위한 공동 주거 공간이다.

흔히 '창업 공간 = 혁신 거점'으로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창업 공간을 통해 혁신이 창출되고, 그 혁신의 효과가 인근으로 확산된다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지역의 혁신 선도자로서 창업 공간이 필요하고, 창업 공간이 유지되어야 혁신 생태계가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부단히 제기된다. 국내에서도 262개에 이르는 전국의 창업보육센터, 17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 43개의 창업선도대학이 모두 이 비슷하게 지역의 혁신 거점 육성이라는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공간이 홀로 혁신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것은 공간을 운영하는 원리이다. 어떤 관점과 어떤 원칙으로 운영하느냐가 혁신의 성패를 좌우한다. 스타시옹 에프는 두 가지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모든 유형의 창업가들에게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하나이고, '창업자의 문제 90%가 다른 창업자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이 중 '모든 유형'이란 창업 공간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스타시옹 에프는 프랑스인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업자의 67%는 프랑스인이지만 나머지는 해외에서 지원한 창업자들이다.

창업자의 40%는 여성이고, 창업자의 26.4%는 자녀가 있는 부모이다. 14세의 창업자도 있지만 65세의 창업자도 활동하고 있다. 스타시옹 에프가 운영하는 파이터스 프로그램(fighters' program)에서는 난민과 이주민, 재소자 등을 우대하여 선발한다.

'종합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더욱 왕성하게 촉진될 수 있도록 일터뿐만 아니라 생활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창업하는 것이 곧 삶이자 생활일 때 창업자가 더욱 다양한 상호작용을 체험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비록 파리의 비싼 월세를 고려한 것이겠으나, 창업자를 위한 주거 공간 제공도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다. 스타시옹 에프가 지향하는 것은 공동일터(co-working)가 아닌 공동삶터(co-living)이다.

창업자 문제의 대부분은 다른 창업자가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은 혁신성이 창업 공간의 밀집성에 비례함을 시사한다. 밀집되면 밀집될수록 더욱 더 많은 독특함, 괴짜스러움, 엉뚱함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밀집성이 크면 클수록 실패한 창업자가 새로운 기회와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어느 프로젝트에서 실패한 창업자가 옆 자리에서는 새 사업의 선도자가 될 수 있다. 창업자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 보고, 배우며, 깨달을 수 있는 상호작용의 공간이다. 창업자의 가장 큰 조력자는 유사한 고민을 하는 창업자이다. 어줍잖은 멘토링이나 창업 교육은 설 자리가 없다.

나아가 스타시옹 에프는 그 자신에게도 혁신을 적용하고 있다. 철도기지를 창업 공간으로 변신시킴으로써 창업 공간이 지역 재생과 결합한다. 어디에 창업 공간이 위치해야 하는가? 가장 낙후된 곳, 가장 변화가 더딘 곳이다. 왜 이 곳이어야 하는가? 가장 낙후되고 가장 더딘 곳이 가장 큰 혁신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창업 지원을 위한 사회적 비용 지출의 정당성을 발견하는 논거이기도 하다.

창업지원 정책이 본격적으로 수립된 지 이제 10년을 넘기고 있다. 어떤 접근법을 모색해야 하는가? 스타시옹 에프는 창업 공간의 재해석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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