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1 한국기행 '노포기행 - 3부. 찬바람 불면, 어죽' / 31일 밤 9시30분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 속에 등장하는 정겨운 풍경이 있다. 두 달에 한 번씩 끌려가 머리를 깎았던 목욕탕 옆 이발소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끝나면 달려갔던 문방구점, 동네 아저씨들과 아버지가 주말이면 모이던 선술집. 그 시절 기억의 조각에 남아있는 그곳은 여전할까?

이발소 집 철없던 막내아들은 머리에 하얀 서리를 맞은 채로 가위질을 하고 늘 동네 골목대장이던 문방구 집 아들은 이제 어머니 대신 카운터를 본다. 삶에 지치는 순간이면 떠오르는 그곳. 추억 속의 그때 그 집을 찾아가 보자.

충청남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오서산도 찾아가본다. 오서산은 '서해의 등대산'으로 불려왔다.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이어진 억새밭은 오서산을 가을산행의 명소로 만들었다.

"여기 정상에 가면은 갈대가 유명하구요, 서해바다가 한눈에 쫙 보여요."

해마다 오서산의 은빛 억새 물결을 보기 위해 수많은 등산객들이 가을 오서산을 찾는다. 정암사가 그들을 다정하게 맞는다. 맑은 소리를 내는 범종루 아래를 지나 한 잔에 10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를 마시고나면 1600계단이 이들을 기다린다.

정상에 오른 이들은 일렁이는 은빛 억새의 물결과 서해의 보석 같은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꾸라지는 늙은 호박, 노랗고 맛있는 것만 먹어요, 달잖아요. 애호박은 안 먹어요." 오서산을 등산한 이들이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유명세에 비해 허름한 외관의 어죽집이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물통 속에서 호박을 먹고 있는 미꾸라지다. 산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력을 채워주는 귀한 가을 보양식이다. 오래된 단골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던 맛을 닮은 이 식당을 잊지 못해서 다시 찾아온단다. 3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동춘씨는 어죽에 들어가는 재료들 대부분을 직접 키우고 있다. 10년 넘게 홀로 식당을 지켜온 김동춘 씨. 그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아들 식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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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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