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30년'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회사를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수출 1등 공신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의 선견지명과 뚝심 있는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건 1974년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이 회장은 당시 회사 경영진의 강력한 반대에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계에 들어가는 단순 기능의 칩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막 주목받기 시작한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 등의 독무대였고, 대규모 투자와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3년 2월 이른바 '도쿄 선언'을 하면서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렸다. 삼성전자는 그 해 11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전했다.
당시 D램 개발에 참여했던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마치 자전거를 만드는 철공소에서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라는 주문과 같을 정도로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6년만에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일본과 비교해 볼 때,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은 선진국과 비교해 10년 이상 차이가 났던 반도체 기술 수준을 3~4년으로 크게 줄였다. 이후 삼성전자가 1988년 11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하면서 완성품과 부품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사업구조를 만들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고 경영진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뚝심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이 기흥에서 D램 2라인 완공을 한 1986년 당시 D램 시장은 큰 불황기였지만 이병철 회장은 3라인 착공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1988년 D램이 대 호황기를 맞으며 선견지명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또 1988년 성공한 4M D램 개발 당시 반도체 설계 공법으로 '트렌치(Trench)'와 '스택(Stack)'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졌을 때, 경영진은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판단으로 불량을 분석하기 쉬운 스텍 방식을 택했다. 이 기술은 이후 주력이 됐고, 반대로 트렌치를 선택한 당시 선두였던 도시바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2년에는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에서도 1위로 올라갔다. 2001년 낸드플래시 업계 1위였던 일본 업체의 사업제휴 제안도 있었지만 독자 사업화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직 구조'의 3D 낸드플래시를 처음 세상에 선보였고, 이는 지금까지 초격차 기술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박정일기자 comja77@
[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회사를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수출 1등 공신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병철 선대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회장 등 오너의 선견지명과 뚝심 있는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건 1974년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이 회장은 당시 회사 경영진의 강력한 반대에도 사재를 털어서라도 반도체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계에 들어가는 단순 기능의 칩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막 주목받기 시작한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미국과 일본 등의 독무대였고, 대규모 투자와 기술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3년 2월 이른바 '도쿄 선언'을 하면서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진출을 알렸다. 삼성전자는 그 해 11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64K D램 개발 소식을 전했다.
당시 D램 개발에 참여했던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마치 자전거를 만드는 철공소에서 초음속 항공기를 만들라는 주문과 같을 정도로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6년만에 64K D램 개발에 성공한 일본과 비교해 볼 때,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은 선진국과 비교해 10년 이상 차이가 났던 반도체 기술 수준을 3~4년으로 크게 줄였다. 이후 삼성전자가 1988년 11월 1일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하면서 완성품과 부품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사업구조를 만들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고 경영진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뚝심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이 기흥에서 D램 2라인 완공을 한 1986년 당시 D램 시장은 큰 불황기였지만 이병철 회장은 3라인 착공을 서두르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1988년 D램이 대 호황기를 맞으며 선견지명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또 1988년 성공한 4M D램 개발 당시 반도체 설계 공법으로 '트렌치(Trench)'와 '스택(Stack)'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졌을 때, 경영진은 어려울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자는 판단으로 불량을 분석하기 쉬운 스텍 방식을 택했다. 이 기술은 이후 주력이 됐고, 반대로 트렌치를 선택한 당시 선두였던 도시바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2년에는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에서도 1위로 올라갔다. 2001년 낸드플래시 업계 1위였던 일본 업체의 사업제휴 제안도 있었지만 독자 사업화의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2013년 8월에는 낸드플래시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직 구조'의 3D 낸드플래시를 처음 세상에 선보였고, 이는 지금까지 초격차 기술을 선도하는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박정일기자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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