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연구그룹을 배출하기 위해 7년전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유명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같은 날 나란히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연구자가 평생 한번 이름을 올리기도 힘든 사이언스지에 한 연구기관이 같은 날 두 가지 논문을 실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IBS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이화여대 교수)과 로드니 루오프 다차원탄소재료연구단장(UNIST 특훈교수)팀은 각각 단일 원자 관찰기술과 단결정 금속포일 제조기술 관련 논문을 사이언스지 19일자에 발표했다.
하인리히 단장팀은 미 IBM 알마덴연구소와 공동으로 고체표면 위에 놓인 단일 원자의 특성을 정밀하게 관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원자가 자성을 띠게 하는 핵스핀이 내는 에너지는 매우 약해서 지금까지는 수백만 개 원자핵의 신호를 한꺼번에 읽어서 특성을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IBS 연구진은 주사터널링현미경(STM)과 전자스핀공명(ESR) 기술을 결합해 이전보다 1만배 정밀하게 에너지 분포를 읽어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하면 마치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신체 내부를 진단하듯 고체표면 위 원자 한 개의 핵스핀을 측정할 수 있다.
이 기술은 양자컴퓨터, 차세대 메모리 등에 응용될 전망이다. 이들 장치를 구현하려면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를 더 작게 만들어야 하는데 핵스핀은 유력한 저장단위지만 그동안 측정이 힘들다 보니 응용도 어려웠다. 이번 연구성과에 힘입어 원자 하나를 정보 저장단위로 하는 메모리가 선보일 수 있을 전망이다.
하인리히 단장은 "여러 원자의 특성을 토대로 쓰인 기존 물리학 지식을 검증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현존하는 물리이론을 뛰어넘는 소재 발굴의 돌파구를 제시한 셈"이라고 말했다.
루오프 단장팀은 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알루미늄 포일 같은 금속 포일을 단결정 구조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단결정은 재료 전체에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를 말하는데, 원자가 비규칙적으로 늘어선 다결정에 비해 표면 특성이 균일하고 전기전도가 높다는 강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소재로 쓰면 고성능 전자기기를 개발할 수 있다. 그동안은 단결정으로 만드는 공정이 까다롭다 보니 비용이 높고 넓은 면적으로 만들기 힘들었다.
연구진은 '무접촉 열처리'라는 공정을 개발해 이전의 1000분의 1 비용으로 최대 32㎠ 면적의 단결정 구리 포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수소가 채워진 환경에서 다결정 금속포일에 열을 가해 단결정 포일로 전환시킨 것. 이렇게 만든 포일은 다결정 포일에 비해 전기저항이 7% 낮아 더 많은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포일 위에서 단결정 그래핀을 형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루오프 단장은 "구리, 니켈, 백금 등 다양한 금속을 손쉽게 단결정으로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실리콘 단결정 성장 기술 발견이 반도체의 역사를 연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세상을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