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 살충제 계란, 라돈 침대 등 생활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케모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 현상까지 빚어지는 가운데 과학자와 소비자,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하는 소통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창의재단 등이 참여하는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이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총에서 생활화학물질 안전과 관련해 개최한 포럼에서 이병훈 한국독성학회 회장(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은 "케모포비아의 원인은 결국 대부분 불신"이라면서 "불신을 낮추기 위해서는 과학자와 소비자, 정부간 긴밀한 유해정보 교류가 필요한데 이중 소비자와의 정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교수는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위험평가는 과학자, 관련 정책적 대응은 정부가 하는데 두 영역간의 소통은 잘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데 소비자와의 정보교류가 원활하지 않다 보니 화학물질공포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화학물질 사고를 겪으면서 쌓인 불신 때문에 국민들이 실제 처한 환경에 비해 위험성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OECD가 건강, 주거, 소득, 고용 등 11개 지표를 평가해 회원국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중 건강지표에서 38개국 중 35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특히 건강지표를 구성하는 항목 중 기대수명은 38개국 중 11위로 상위 수준인데 스스로 생각하는 건강 정도는 38개국 중 38위로 꼴찌로 드러났다. 이 교수는 "실제 건강관리 정도나 생활환경 수준에 비해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큰 것이 케모포비아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생활화학물질 위해성과 관련해 국민인식 조사를 한 결과, 54.3%의 응답자가 화학물질이나 화학제품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화학물질의 위험이 너무 두려워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답한 응답자도 40.7%에 달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위험 정보에 자주 노출된 응답자는 60.2%에 달했으나 26.7%의 응답자만이 직접 정보를 탐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가 '정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19.7%가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고 답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내 스프레이 제품 방송광고를 분석한 결과 위험정보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었다"면서 "특히 생활화학제품에서 99.9% 향균, 99.9% 살균 같은 문구는 심의를 통해 신중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명순 교수는 "천연물질은 자연물질과 달리 합성물질인데 광고 속에서는 자연에서 온 물질로 포장된다"면서 "과학계가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평가하고 정부가 이를 검증하는 체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미디어와 언론이 생활화학제품 리스크 거버넌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사 결과 기업이 자사 제품의 위험정보를 제공했을 때 소비자들은 오히려 신뢰도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스프레이 제품에 사용되는 439종의 살생물질 중 흡입 독성정보가 확인된 물질이 55종인데 이들 성분에 대해 기업들이 여전히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은 "소비자 조사 결과 하루에 평균 46종, 최고 89종의 화학제품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여러 제품에 복합 노출됐을 때의 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이 제품에 포함된 물질의 함량정보 공개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의무화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자발적 정보제공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소비자들은 계속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불안감이 해결되기 힘든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총에서 열린 포럼에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관련 정보공유 체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총에서 열린 포럼에서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관련 정보공유 체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