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사업화지원실 운영 병원 25곳 · 기업 19곳과 손잡고 357억원 들여 AI 의료SW 개발 KIST "AR기술 등 빠르게 적용 모든 수술실 로봇시스템화 될것"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빅데이터센터에서 김영학 소장(가운데)이 연구진과 함께 의료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혁신성장 바이오융합이 이끈다 6. 병원 현장은 데이터 빅뱅
"병원 현장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IT와 데이터가 병원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병원들이 본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빅데이터센터장(심장내과 교수)은 특히 한 병원 내의 움직임에 그치지 않고 많은 병원들이 다른 병원과의 연계를 통해 디지털협업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병원의 디지털화와 지능화는 단일 병원의 노력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전체 생태계가 변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산병원은 병원 내 각종 진료정보 뿐만 아니라 생체신호 등 이전에는 관리 대상이 아니던 데이터까지 모아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다른 병원과의 협업도 시작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국가 과제를 수주해 한국형 AI(인공지능) 정밀의료 서비스 실험을 시작했다. 25개 병원과 19개 기업이 참여해 병원 내 데이터를 연계해 미래형 의료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협업하는 것.
김영학 교수는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3년간 총 357억원을 투입, AI 의료데이터 통합·연계기술 뿐 아니라 대장암·심장질환·치매 등 8개 질환 치료에 쓰일 수 있는 21개 AI 의료SW(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계획이다.
심장내과 임상의인 김 센터장은 진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IT에 할애한다. 최근 의료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네이버·카카오 등 많은 IT기업들이 먼저 병원을 찾아온다.
김영학 센터장은 "IT와 데이터가 앞으로 병원의 중요한 의사결정과 투자처가 될 것"이라면서 "IT와 관련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느냐가 병원의 운명을 가르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다른 어떤 병원보다 적극적이다. 전담조직인 사업화지원실을 두고 병원 내 연구자의 특허 출원·등록·관리와 기술이전, 교수들의 창업, 외부 기업이나 기관과의 협업이나 공간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과는 연구자 차원의 협업뿐 아니라 기관간 협업도 이어오고 있다.
미국 보스턴, 캐나다 토론토, 일본 고베 등 세계적인 메디클러스터를 규모 면에서는 작지만 미니 메디클러스터를 병원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병원 내에 들어선 융합연구관이 클러스터의 거점 역할을 한다. 메디포스트, 크리스탈지노믹스, DNA링크 등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들이 이곳 출신이다.
아산병원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도 4개가 입주해 있다. 가장 먼저 창업한 기업이 작년 초 설립됐으니 의사들의 창업활동은 이제 첫발을 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 자리 잡은 기업들은 병원의 임상현장에 있는 전문가들과 바로바로 스킨십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장점이 있다. 병원 역시 연구결과물을 실용화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를 만나서 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얻는 게 많다. 입주기업뿐 아니라 외부 기업들도 병원이 가진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병원은 연 세 차례 정도 기업 대상 연구성과 설명회를 열고, 외부 파트너링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병원이 보유한 데이터를 누구나 활용해 창업기회를 얻도록 빅데이터 경진대회도 열고 있다. 병원 내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려서 학생, 회사원 등 다양한 팀이 이를 활용한 결과물을 내놓도록 했다. 대회에 참가한 몇명은 실제 창업에 도전하기도 했다. 대회가 좋은 영향을 미쳐서 다른 병원들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분야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 규제와 칸막이가 강해 사업화와 혁신에 어려움이 크다.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사업화지원실 팀장은 "의료는 사업기회가 무궁무진하고 하나하나의 회사가 보유한 기술의 파급효과가 매우 큰 분야"라면서 "분야의 특성상 규제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모든 걸 하지 말라고 해서는 이런 기회들을 놓칠 수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회적 합의와 틀을 만들고 합의된 룰을 어겼을 때는 패널티를 제대로 가하면 많은 이들이 기회를 얻고 국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병원은 뭐든지 나올 수 있는 플랫폼"이라면서 "특히 이전에는 개개인의 구성원 차원에서 이뤄지던 혁신노력이 최근 조직적 팀플레이로 발전하면서 강한 파괴력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와 디지털기술이 현재의 발전속도를 이어갈 경우, 첨단 의료기술이 인간을 치료하는 수준에서 나아가 인간의 질병 가능성을 미리 파악해 예방하고 치료하는 '초정밀의료'가 현실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의료계가 비전으로 삼고 있는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가 한 단계 발전한 개념이다.
특히 로봇과 AI, AR(증강현실), 가상물리 기술의 융합으로 실제와 가상의 세계가 영화 아바타의 장면처럼 연결되면 의료·과학기술이 인간을 진화시키는 수준까지 도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증강, 인간진화를 다루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조직적으로 연구되고 있고 관련 협회, 기업까지 생겨났다. 단순한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의 이슈가 아니라 인간 본연의 가치와 지향점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논의가 치열하게 일어날 전망이다.
데이터 분석과 AI, 통신, IoT(사물인터넷), 웨어러블기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는 이미 의료혁신 실험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 규제가 풀리면 다양한 데이터 활용사례와 의료서비스가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정부도 당뇨렌즈 등 융복합 의료기기 산업화를 유도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등 헬스케어 산업화 정책을 서두르고 있다. 아울러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국립암센터가 보유한 4대 공공 의료정보와 연계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벤처들은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헬스케어 산업에 플러스 알파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강성철 KIST 의료로봇연구단장은 "이미 병원의 수술실은 빅데이터와 머신러닝, 로봇, AR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기 시작했다"면서 "그동안의 로봇수술이 의사의 기법을 로봇이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술실 전체가 로봇시스템화 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AI로 무장한 로봇이 환자를 진단하고 수술하는 무인수술이 일반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과학기술자들은 특히 미래에는 과학기술이 인간 육체의 시간과 공간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
약 200명의 연구자가 의료로봇과 영상미디어, 지능로봇을 연구하는 KIST 로봇미디어연구소의 여준구 소장은 "실감교류, 영상, 미세수술, 치매치료 등과 로봇을 결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진화하는 AI로 무장한 이들 로봇이 다음 세대에 실용화되면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