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김양혁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대표단 일정도 고사한 채 미국으로 건너가 '고군분투' 중이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 고위 인사들과 회동을 하고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문제에 대해 '호혜적 조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발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자동차산업을 넘어 경제에까지 타격이 불가피할 만큼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한 셈이다.
2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16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 수석부회장은 18∼19일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조니 아이잭슨 조지아주 상원의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잇달아 면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한국산 자동차 관세 부과(최대 25%) 움직임에 대한 국내 자동차업계의 의견을 전달했다.
정 부회장은 양국 간 FTA(자유무역협정) 개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만큼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호혜적 조처를 해 달라고 요청하며 미국 공장 운영을 통해 미국 자동차산업의 중요한 일원으로 노력해 온 점과 현지 판매 현황에 대해서도 충실히 설명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정 부회장의 설명을 경청하면서 현재 진행 중인 무역확장법 232조 관련 조사에 참고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의 이번 미국 방문은 현대차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첫 대외 일정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주 금요일 9년 만에 승진 인사에 포함된 지 이틀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는 통상 현안에 민간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5월 상무부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산 자동차와 부품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최근 미국과 멕시코가 합의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안에 멕시코산 자동차의 연 수입량이 240만대를 넘을 경우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2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기는 등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당장 현대·기아차의 국내 공장 일부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작년 생산한 전체 차량 49만2233대 가운데 미국 수출량은 37.37%(18만3959대)를 차지하고 있다. 쏘울 10만9146대(전기차 포함)와 스포티지 7만3717대가 광주에서 생산된 미국 수출 주력 품목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관세 부과의 예외를 인정받거나 낮을 관세율을 적용받기 위해 한미 양국이 이미 자동차 교역 시 상호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고, 지난 3월 한미 FTA 개정 합의로 비관세 무역 장벽을 추가 제거하는 등 자동차 부문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미 FTA 개정 합의문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산 픽업트럭과 같은 화물차를 수입할 때 붙이는 25% 관세의 철폐시한을 2041년까지 20년 연장했다. 또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미국 안전기준만 맞추면 제작사별로 연간 5만대까지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김양혁기자 mj@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