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당정협의를 열고 공정거래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해서 을(乙)을 갑(甲)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당과 공정위가 여전히 갑을논리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 사례이다. 공정거래법의 본질은 당사자 중 일방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들 간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차단해서 소비자의 권익도 증진시키고 산업도 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경쟁을 촉진시켜 공정한 거래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의 본질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공정위는 갑과 을을 구분하고 을을 보호해야 공정한 거래질서가 확립되는 것처럼 보고 있는 듯하다. 즉, 사업자와 대주주, 대기업은 갑이며 소비자와 시장지배력이 없는 기업은 을이라는 전제 하에서 을을 보호하면 공정한 거래질서가 형성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는 항상 유동적으로 번복될 수 있는 것이며, 사업자와 대주주도 경우에 따라서는 을의 지위에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소비자와 시장지배력이 없는 기업도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선진 각국은 공정거래법상 갑과 을을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누구든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할 때 비로소 제재를 가하는 사후 규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지분이 많거나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사전에 차별적 규제를 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당정이 제안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선, 담합과 관련해 소비자가 불공정 거래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원에 판매금지소송을 제기하도록 하는 것은 자칫하면 국내사업자들을 해외로 내모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담합은 공정위가 '상품시장획정'과 '묵시적 합의'에 대한 면밀한 법리검토를 마친 후 법원에 제소해도 패소하는 경우가 많은 사안이다.
당정안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된다면 앞으로 사업자는 소비자가 의혹성의 소송을 제기하고 판매금지가처분 신청만 하여도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당정안대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대상을 현행 203개에서 향후 441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 역시 국내투자를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일감몰아주기가 때로는 사업자간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필요한 경영전략 중 하나인 경우도 많다. 특히,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규제나 금산분리규제, 기업결합 규제 등과 같은 각종 규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국내 자산가들은 일감몰아주기라는 규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국내 기업보다는 해외기업을 인수하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여당과 공정위의 안대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이러한 자본해외유출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이번 당정 안에서는 대기업 순환출자 규제를 강화하고 담합, 시장지배력 남용 위반 기업에 적용하는 과징금의 최고한도를 2배로 인상하기로 하는 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역시 국내자본의 해외투자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여러 지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참패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일자리 정책의 실패가 국내투자 억제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재점검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