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ICT(정보통신기술)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일찌감치 낙점해 키우는 등 재계 3위로 성장한 SK그룹의 토대를 만든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정신이 타계 20주기를 맞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아들인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를 인수해 아버지가 생전에 그렸던 밑그림을 완성했고, 지금도 사회적 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 사업보국(事業保國)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 회장 시절인 1997년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울 때도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경제 살리기를 호소하다 1998년 8월26일 69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친 최종현 회장이 타계 20주년을 맞아 재조명을 받고 있다.
최종현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 당시 선경(현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것이다. 최종현 회장은 치밀한 준비 끝에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고, 이후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1991년에는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시설을 준공함으로써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종현 회장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 경영실을 세웠고,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앞선 준비 끝에 1992년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내부를 설득한 최종현 회장은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원 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했지만,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최 회장은 또 1970년대부터 인재 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우선 1972년에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현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의지에 따라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으며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 세계적 석학이 된 이들은 학술교류와 민간외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종현 회장은 화장(火葬)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 한 달 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1998년 20%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를 넘는 등 매년 급증했고, 현재는 82%에 달할 만큼 대중화됐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최종현 회장이 남긴 경영 DNA는 장남인 최태원 회장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이다.
그 결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1998년 취임할 당시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지만, 현재는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또 최종현 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발전해 여러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키우고 있다.
한편 SK그룹은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아 최종현 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5만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한 데 이어, 14일부터는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한다. 이어 24일에는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할 예정이다.
이항수 SK그룹 홍보팀장(전무)은 "최종현 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첫번째)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한 모습. 원 안은 고(故) 최종현 회장과 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SK그룹 제공>
고(故) 최종현 회장(왼쪽 첫번째)이 1981년 초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최 회장은 제 2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외교'를 해 우리나라의 원유공급 문제를 해결했다. <SK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