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올 하반기 재계 대표인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 행보가 빨라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일자리 창출 살리기 요청에 응해야 하고, 또 그룹별로 예고한 조직재편 시점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영 복귀와 세대교체를 한 일부 그룹들은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는 올 하반기에도 지난 2015년 삼성과 한화그룹 간 빅딜과 같은 대규모의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방문 시점 이후 적절한 시기에 100조원 이상 투자와 동반성장, 일자리 창출 계획 등을 대외에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와 김 부총리 간 난기류로 6일로 예정했던 삼성전자의 투자계획 발표가 미뤄졌지만, 멀지 않은 시점에 공개할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 창출 요청을 당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발표 시점이나 내용에 대해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최근 공시한 중소기업 스마트팩토리 구축 지원을 비롯해 동반성장을 위한 신성장 사업 생태계 구축 방안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우리 수출의 20%를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10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와 인재 채용 계획도 내놓을 전망이다.
여기에 앞서 김 부총리와 총수 간 회동을 한 현대자동차그룹(5년간 23조원 투자·4만5000명 고용), SK그룹(3년간 80조원 투자·2만8000명 고용), LG그룹(2018년 19조원 투자·1만 명 고용), 신세계 그룹 (3년간 9조원 투자·매년 1만명 이상 고용) 등도 약속한 투자와 고용 계획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 같은 요청과는 별도로 대기업들은 대규모 사업재편과 M&A를 앞두고 있어 올 하반기 재계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대차그룹의 경우 지난 5월 중단했던 지배구조 재편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재계에서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합병 비율 재조정과 함께 추가적인 주주친화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현대차와 모비스 간 합병 등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지만, 정몽구 회장 일가가 조 단위의 사재 출연까지 하면서 다른 방식을 택했던 만큼 가능성은 높지 않다.
SK그룹 역시 올 하반기 SK텔레콤의 중간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핵심은 그룹의 핵심으로 부상한 SK하이닉스의 위상 강화다.
재계에서는 당장은 주주들의 반발이나 낮은 지분율 등을 고려했을 때 SK하이닉스의 그룹 자회사 승격을 연내 추진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의 물적 분할과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 등의 과정을 거쳐 현금을 마련하고, 이후 추가 조직 재편 등으로 SK하이닉스의 그룹 내 위상을 높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의 금산분리 압박으로 삼성생명·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각 추진 가능성을 비롯해 마찬가지로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한화와 롯데 등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2015년 삼성과 한화 간 빅딜과 같은 그룹 간 대규모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부 대기업은 오너 교체와 조직재편 마무리에 따른 공격적인 M&A 추진 가능성도 있다. 취임 한 달을 조금 넘긴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우 '해결사'로 꼽히는 권영수 부회장을 지주회사 경영의 최측근으로 중용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구 회장의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LG 부회장의 계열분리 또는 독립 역시 연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CJ의 경우 이재현 회장의 경영복귀 이후 1년간 내부 조직 재편을 사실상 마무리했고, 하반기부터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등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M&A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중단했던 CJ헬로비전의 매각 재추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밖에도 최근 한화시스템과 한화S&C의 합병으로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해소한 한화그룹 역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추가적인 지배구조 재편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박정원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재무구조 강화에 힘쓰고 있는 두산그룹의 경우 본격적인 미래 성장사업 육성을 위한 공격 경영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근 1~2년 동안 숨죽였던 대기업들이 경제 살리기와 미래 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명분을 얻은 만큼 하반기부터 활발하게 움직일 것"이라며 "정부가 신성장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독려하는 규제완화 마중물을 제시할 경우 투자는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3월 서울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혁신성장 현장소통 간담회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유동일기자 eddie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