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세 번째 결정이 내려졌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의 근거조항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헌결정이 내려졌지만, 병역법 제5조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림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해묵은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법논리적으로만 보면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은 합헌이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를 도입하지 않은 것은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모순적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일관성 있게 전개되려면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해서도 병역법 제5조와 마찬가지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이면에는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국회 내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대 총선 전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획정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제때에 법 개정을 하지 않아 선거구가 무효화 됨으로써 선거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자들에게 상당히 큰 혼란을 야기한 바 있었다. 그런데 만일 대체복무제 도입이 제때에 이뤄지지 않아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무효화 될 경우에는 병역기피자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병역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짧지 않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합의는 선거구획정에 대한 합의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것은 병역의무 이행자를 비양심으로 몰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아직도 양심적 병역거부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국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합리적 대체복무제 도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단계에 왔다.
문제는 대체복무제의 내용을 어떻게 형성해야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현역복무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느냐에 있다. 만일 대체복무의 내용이 현역복무와 비교해 가볍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대체복무 자체가 특권 내지 특혜가 될 것이며, 이로 인한 시비는 계속될 것이다. 또한 정상적인 현역복무를 기피하는 사례들이 무수히 발생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대체복무의 내용이 너무 가혹해서 징벌처럼 느껴질 경우에는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이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대체복무제 법안들에 따르면 복무기간은 현역복무의 1.5배 내지 2배 정도로 하고, 군무원이나 소방관, 경찰관, 병원근무나 복지업무 등을 담당하게 하며, 군대의 내무생활과 유사하게 합숙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정도로 현역복무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현역복무보다 대체복무를 선호하게 되어 군의 병력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양심적 병역거부자 판정을 엄격하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도대체 누가 개인의 양심을 깊이 들여다보고, 양심적 병역거부인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또한 대체복무 대상자의 숫자를 제한할 경우,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심사에서 탈락해 다시금 감옥을 선택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문 제해결의 방향은 뚜렷하다. 현역복무의 부담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이와 비교하여 대체복무의 부담이 현역복무 부담의 실질적인 1.5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현역복무의 경우에 당사자들이 느끼는 복무강도, 복무여건, 그리고 무엇보다 군대 내의 가혹행위나 총기사고 등에 대한 불안감 내지 위험성까지도 고려하는 가운데 대체복무의 기간과 강도가 정해져야 한다. 또한, 대체복무의 유형에 따라 복무 강도에도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체복무기간의 차등화도 필요할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역복무 및 대체복무의 복무 강도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내려져서 많은 국민들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적기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