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신작이 나왔다. 주 52시간 근무제. 그동안의 근로 풍속도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는 초대형 블록버스터다. 영향력이나 파괴력 면에서 역대급이다. 사람들은 이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런 청량제 같은 소식에도 떨떠름하는 이들이 더 많다. 언감생심, 코웃음을 친다. 저녁은 있으나 빈곤한 저녁은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워라밸 시대다. '일과 삶의 균형'을 목표로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겠단다. 그러나 정작 노동현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14년 전 주5일제 근무가 도입될 때처럼. 문제는 근로의 형태와 성격이 워낙 다양해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건건마다 대법원 판례를 기다릴 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된 지 27일째. 시대적 요구와 당위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과 근로자는 혼란스럽고 불편해 하는 분위기다. 후진적 근로환경을 개선하자는 데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노총이 지난달 267개 산하조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115곳(43.1%)은 "노동시간 단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했다. 절반 이상이 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했다. 이 중 임금 보전이 가능한 사업장은 열 곳 중 세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쓰나미는 한반도를 엄습할 태세다.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6월 수출은 512.3억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대비 0.089% 감소했다. 철강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7월 현재 선박수출은 전년 동기대비 무려 75.8%나 줄었다. 총칼 없는 전쟁은 급기야 환율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막상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답이 나온다. 얇아진 지갑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평일 저녁엔 대리운전으로, 주말엔 편의점 알바로 달려간다. 미생들 이야기가 씁쓸하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그늘이 길고 깊다. 근로시간에 대한 규정 또한 명확하지도 않다. 휴식 시간에 흡연이나 커피를 마시는 경우 근로시간에 포함될까. 부서 회식이나 거래처 접대는? 알쏭달쏭하다. 어떤 게 근로시간인지 아닌지, 난해한 방정식 문제를 몽땅 던져놓고 풀어보란 식이다.
예행연습을 해 온 대기업은 아직 큰 혼란은 없어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부터 52시간 근무제를 시범운영했다. 업무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확대해왔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1월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9976(한국경제 비중의 99%, 종사자 수 비중은 76%)'이라는 중소기업은 사정이 절박하다. SW 개발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지인은 푸념을 한다. "요즘 밥맛이 없다. 주 52시간을 지키면서 발주 받아 기한 내 납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은 아니지만 공기도 길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하고 개발비용도 30~40% 정도 오를 것"이라고 한다.
하청받는 대부분의 IT기업은 밤샘 근무가 일상화됐다. 납품기일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함께 모여 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노사가 더 일하기로 합의를 했더라도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영세한 업체는 시장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일부 업종의 불만은 상당하다. 이들의 요구는 간결하다. 산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 52시간 근무 탄력적용 단위기간을 늘린다는 방침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준비 기간이 촉박하다는 지적에 따라 고작 6개월의 계도기간을 운영한다는 것 뿐이다. 급격한 노동시간 단축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만 들린다.
정부의 졸속, 과속, 무대책이 문제다. 당위성과 명분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노동시간은 줄여나가되 어떻게 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 워라밸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치열한 고민과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다간 워라밸도 빈익빈 부익부라는 비아냥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