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학희 한국무역협회 국제사업본부장
조학희 한국무역협회 국제사업본부장
조학희 한국무역협회 국제사업본부장

수년 전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출장 중에 겪은 일이다. 전 직장동료가 그곳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오랜만에 만나 그의 현지생활과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꽤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바에서 함께 맥주를 마신 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하니 그가 이미 계산을 했단다. 카운터에 다녀오거나 웨이터에게 돈을 주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참 의아해 했다.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지 잠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던 것은 기억나지만 말이다. 알고 보니 케냐의 통신사인 사파리콤이 지난 2007년에 론칭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엠피사(M-Pesa)'를 통해 결제를 끝냈다는 것이다.

케냐의 낙후된 금융환경이 핀테크 산업의 발전을 촉진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던 엠피사의 사례에서 보듯 아프리카의 낮은 산업화는 스타트업들에게 오히려 더욱 많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바이오텍 아프리카(Biotech Africa)라는 스타트업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민간부문의 투자를 유치해 생산시설을 구축한 끝에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HIV 테스트킷과 지카 바이러스와 C형 간염 진단에 사용되는 유전자재조합 단백질을 생산하는 업체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과 아시아,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데 성공해 현지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적도 있다. 특히 한국의 한 업체가 이 회사로부터 물질을 공급받아 '바이오트레이서'라는 이름의 테스트킷을 제조해 남아공 보건부에 납품하고 있다. 조만간 추가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자체적으로 테스트킷을 생산해 납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영세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의 약 60%는 공급망의 비효율 때문에 시장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화가 낮은 단계에 머무는 데 따른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와 같은 IT 강국에는 기회이기도 하다. 농산물 공급망을 지원하는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결과 아프리카 망고 생산농가의 소득이 60% 증가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제53차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연차총회가 이달 21일부터 25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됐다. '아프리카의 산업화 촉진(Accelerating Africa's Industrialization)'을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총회는 정상급 인사로 모로코 총리를 비롯해 80개 회원국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와 기업인 등 약 4000명이 참가했다. 1964년 설립 후 초대 총회 이후 53년간 아프리카가 아닌 역외국가에서 개최된 경우는 이번이 다섯 번째인 점도 이채롭다.

무역협회는 이번 총회의 부대행사로 '보다 나은 아프리카(Better Africa)'라는 주제의 스타트업 공모전을 준비해왔다. 국내 스타트업, 대학생 예비 창업자들의 우수한 아이디어를 발굴해 사업화와 연계함으로써 창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의 기여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행사기간 중 시상식도 했다.

국내의 많은 유망 스타트업들이 공모에 참가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한 스타트업은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대형 시설 없이도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정용 화덕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모듈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또 다른 응모자는 재난지역에서 긴급 구호활동을 하거나 화장실이 절대 부족한 지역에서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종이 화장실을 개발하여 공급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32년 뒤인 2050년이면 아프리카의 인구는 8억4000여 명의 젊은 인구를 포함해 대략 20억 명으로,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합한 것보다 큰 소비시장이 될 전망이다. 이번에 응모한 국내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가 산업화 촉진이라는 이번 연차총회의 주제에 걸맞게 아프리카의 전력 확충, 삶의 질 향상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특히 국내 스타트업들이 보다 많이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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