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지 18년이 되어간다. 처음 만난 학생들은 취업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나 경험이 없었고 막연한 걱정을 하며 졸업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제상황과 인구구조가 많이 바뀐 지금도 대학 졸업생들이 인력시장을 대하는 자세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등장하고 전통적인 산업과 직업이 사라져가는 주기가 예전보다 짧아지고 있다. 대학 졸업생에 대한 사회 수요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구인구직을 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기존의 대학 교육과정으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경제패러다임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에 종사할 인력을 교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십년된 학과에서 채용된지 오래된 교수진이 간헐적으로 개편되는 교과과정을 가지고 산업수요의 변화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해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운영하는 것은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교수는 논문 등의 연구실적 위주로 성과 평가를 받고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할지라도 본인의 노력을 배분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해마다 새로운 분야로 별도의 학과를 만들거나 수요가 줄어든 학과를 폐지해야 할까? 정규 학과를 설립할 정도의 안정적인 인력수요가 있을지 단기간에는 판단하기 어렵고, 단기간에 학과의 신설과 폐지를 반복한다면 정규교육의 안정성을 해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대학졸업생에 대한 산업수요의 변화에 대학이 비교적 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연계전공과 계약학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대학의 전공 설치 규정에는 정규 학과 이외에 학과간 연계전공을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별도의 정원을 배정받고, 전임교원을 신규로 선발하고, 교육부의 승인을 받는 등의 노력을 덜 수 있고, 많은 대학에서 3~4학년을 대상으로 선발하기 때문에(1학년 신입생부터 교육하는 것보다) 실제 산업에서의 인력수요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처가 가능하다. 충북대학교에도 여러 연계전공이 설치돼 있고, 필자도 경영정보학과, 컴퓨터공학과, 법학부가 참여하는 보안컨설팅전공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경영관리기법, 컴퓨터기술, 법제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보안컨설팅 분야에서 기존 학과의 자원을 활용해 산업계에서 필요한 인재를 탄력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보안컨설팅전공에는 보안컨설팅 전문업체가 교과과정위원회 등에 참여해 이론적으로 치중되기 쉬운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에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산업체 종사자의 재교육을 위해 설치되는 재교육과정과 기존 재학생을 위해 설치되는 고용계약과정이 있다. 기업이나 정부의 교육 의뢰 및 지원에 의해 대학이 해당 분야의 교육과정을 위탁 운영하는 형태다. 인력 수요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간동안 이해관계자간에 협약을 통해 학과를 신설하고 수요가 줄게 되면 학과를 폐지하게 돼 정규 학과를 설치하는 노력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해당 분야의 인력을 공급할 수 있다. 계약학과 선발인원은 대학 정원의 50%까지 허용돼 인력수요의 양적변화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으로 2012년부터 정보보호 분야의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을 운영해왔는데, 법학, 심리학, 경영학, 경제학, 정보통신공학, 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학부 전공을 가진 인재를 매년 10명 내외로 선발했고, 졸업생들은 현재 정보보호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인력수요가 급증한 분야로 연계전공을 개설하고 계약학과 형태로 운영한다면, 학생들은 기존에 입학한 학과 이외에 신규 유망 분야의 전공을 추가로 선택할 수 있고,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재가 집중되는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는데, 지역별 전략산업과 관련된 신규 인력 수요가 있는 산업체(들)이 지역거점대학과 협력해 계약학과 형태로 연계전공을 학부과정과 대학원과정에서 운영하게 된다면, 지역 발전을 위한 인력 수요를 지역에서 충족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인력수급 생태계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