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한종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중앙 행정기관이 지방에 두는 사무소의 명칭에서 '지방'이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모양이다. 이를테면 '강원지방경찰청' 등의 명칭에서 '지방'이라는 두 글자를 빼라는 것인데 그 적용 대상이 전국적으로 155개에 달한다고 한다.

법안을 낸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명칭들이 "중앙 우위의 사고를 공고히 하고 지방 행정기관을 중앙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객체로 전락시킨다"고 입법취지를 설명했다는데 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그럼 지방대 출신이라는 말도 못쓰게 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단어 하나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싶지만 지역에서 일 하는 입장에선 이러한 시도 자체가 통념의 더께를 벗겨내는 작은 혁신의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보면 중앙집중적 사회 시스템은 근대화 이래 우리 경제의 작동 원리이자 그 산물이었다. 자원이 부족하고 가난했던 이 나라 지도자들은 '경제의 3요소'라 불리는 토지 노동 자본 등 모든 물자를 지금은 재벌이 된 특정 기업에 몰아줘 수출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게 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키워왔다. 국책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 역할을 하고 경찰이 노조 파업을 막아주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아둥바둥 애써서 좀 먹고 살만해졌나 하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가 성장의 신화에 취해있는 동안 선진 각국은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신기술과 창의성 기반의 혁신경제로 옮겨가 버렸다. 뭘 따라잡아야 하는지조차 모르게 된 대기업들이 성장정체에 빠지면서 경제는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뒤늦게 우리도 혁신주도 경제로 넘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다소 서투르게 시작한 '창조경제'가 그것이고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혁신성장' 노선도 그걸 이어받은 셈이다. 문제는 그런 혁신조차도 중앙집중식의 오류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요소투입형 경제의 생태계에서는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를 원활히 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제도와 금융과 생산 시스템이 총동원돼야 했지만 혁신주도 경제에선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가진 인재'가 새로운 가치 창출의 원천이다. 좋은 인재가 모이고 이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돈을 대려는 투자자들이 있으면 그걸로 혁신 생태계의 기본은 갖춰진다. 정부는 낡은 규제만 걷어치워주면 된다.

이런 생태계는 대개 작은 도시나 좁은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영국 런던의 테크시티, 핀란드의 헬싱키, 중국의 심천 등이 이런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휘어잡는 스타트업들을 쏟아 내놓고 있다. 세계 각 도시는 유망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력적인 창업생태계를 갖추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마이크로 생태계는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도움 없이도 서울 테헤란로와 홍대 앞, 성수동과 구로동에 작은 생태계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생태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폐허화 돼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 경제는 중앙정부가 '전략산업' 혹은 '지역특화산업' 등의 이름으로 수립한 국토전략에 따라 탑다운으로 뿌려주는 국책자금을 나눠받는데 길들여져 왔다. 지역에는 중앙이 짜놓은 그림을 뒷받침 하는 생산기지만 양산돼 왔고 그 주변에서 떡고물을 받아먹는 소비 생태계만 형성돼 왔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은 모두 서울로 가고 지역은 앤젤투자자도, 벤처캐피털도 없는 불모지가 돼 왔다.

전 세계적으로 '중앙-변방'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혁신적 지역 생태계가 주도하는 시대가 왔다. 성대한 창업공모전을 열고, 카페 분위기 뺨치는 보육공간을 만들고 지역 펀드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의 잠재적 가치를 살린 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지자체의 자기주도권이 강화돼야 하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게 지방재정이 꾸려져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인재가 모여들고 투자자들이 뒤를 이어 생태계를 형성하게 된다. 실리콘밸리가 성장해 온 과정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각 지역 특유의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지방분권과 혁신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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