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시각장애인은 약 2억8000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장애인 중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이 겪는 생활 속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조사는 우리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장애인들이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대체자료의 제작량이 고작 총 출판량의 4%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열악한 장애인의 교육학습 환경으로 인해 장애인 전체의 80%가 수학 기초학력 미달자라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학과목 교과서는 두꺼운 점자책 13권이 한 묶음으로 되어있다. 13권을 마스터해야 비로소 해당학년의 수학 한 과목을 배우는 것이다. 이와 같은 환경으로 인해 개개인의 적성이 충분히 고려된 교육이 어려워 대부분 졸업 후 안마사와 같은 제한된 직종에 종사한다는 보고다.
필자는 정부출연연구원에서 연구자로서 많은 과제를 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기술 연구개발 지원 사업을 통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책 핵심기술을 개발하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수준의 독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쇄된 책을 읽을 수 없는 독서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양질의 전자책을 제공하는 하나의 빛을 준 셈이다. 그동안 장애인들이 원하는 책을 읽기 위해선 수 백 만원을 들여 음성도서나 점자책, 데이지(DAISY) 등 시각장애인 전용 도서로 제작해야 했고 제작기간도 최대 몇 달이나 소요되기도 했었다. 특히,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대체교과서는 교과서가 선정된 후 별도 제작을 하다 보니 비장애인 학생에 비해 교과서 제공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본 기술이 향후 상용화가 되면 장애인·비장애인이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본격적으로 유통될 수 있을 것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교과서 제작 과정도 좀 더 효율화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또 기존 PDF로 된 책이나 국제표준기술인 이펍(EPUB) 기반 도서들을 단 몇 분 안에 장애인·비장애인이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전자책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학습교재도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이 가능해 기존 특수교육용 교재 제작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진들은 지난 2년 동안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출판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국제표준에 맞춘 전자책의 콘텐츠를 뽑아내서 시각장애인이 책을 듣기 쉽게 해주는 기술을 개발했다. 특히 연구진은 시각장애인 사용자들과 만나며 현장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연구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발한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과 전자책 뷰어 기술은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도서 검색은 물론 도서 내에서 원하는 부분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글자/단어/문장 단위 읽기, 사용자 메모나 하이라이트 추가 및 사용자 메모 읽기 등 다양한 방식의 책읽기를 가능케 해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개발한 기술은 그동안 책속 텍스트는 물론 수식, 표, 이미지 등을 설명해 들려주는데 한계를 과감히 극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수식, 표, 이미지 등은 시각 기반 정보 전달 콘텐츠이므로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인 정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 텍스트'가 필요했다. 연구진은 고민에 고민을 더해 수식과 표에 대한 대체 텍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기능을 더할 수 있었다. 이미지에 대한 대체 텍스트도 편집자의 역량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형화된 대체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제공해 주었다.
지난해 말, 연구진은 개발한 기술을 실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외부 테스트를 실시했다. 전자책 본문을 사용자가 원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고, 수식과 표의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독음(讀音)을 통해 전달해주며, 본문에 포함된 오케스트라 연주 이미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들에 대해 참가자들 대부분이 상당한 만족감을 보여줬다. 이로써 ETRI의 플랫폼 기술들은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장애인의 곁을 지키며 향후 출판되는 전자책을 읽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일은 서른 여덟 번 째 맞이하는 '장애인의 날'이다. 이젠 국민 모두가 장애인에 더 많은 관심과 배려로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