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장
양영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장
양영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장

봄비를 맞으며 걷다가 꽃봉오리를 한껏 품은 목련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잎사귀 없이 꽃을 먼저 피워서 그런지 관찰하기가 쉽다. 가만히 보니 한 나무에 있는 수많은 꽃봉오리가 제마다 꽃을 피울 준비가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아! 기초과학이란 나무를 사막이나 자갈밭에 심지 않는 이상 순서는 달라도 모두는 아니어도 결국엔 하얀 꽃을 피우리라. 헌법에서는 연구활동의 목적을 국민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국가 주도 연구활동 지원이 중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우리는 지원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연구를 시작한 일본 야마나카 교수는 2006년 줄기세포연구의 한 획을 긋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분화된 세포를 어떻게 분화 전 상태로 돌릴 수 있을까'라고 고민한 그가 줄기세포의 성장과 유지에 관여하는 인자 중 4가지 핵심인자를 알아낸 것이다. 이에 앞으로 난치병환자의 세포를 역분화시켜 질병 생성과정을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분화줄기세포를 치료에 어떻게 응용하면 되는가' '걸림돌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논문이 1만 건이 넘게 발표됐다. 우리나라 과학자들도 많은 이바지를 하고 있다. 2012년 야마나카 박사는 노벨상을 받았다. 역분화 원천기술은 그의 것이란 선언이다.

다음은 성과를 기대하는 성급함이 초래한 가슴 아픈 사례다. 진단이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루게릭병은 결국 호흡 조절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이 작동을 멈춰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슴 아프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탐 머피(Tom Murphy)도 루게릭병 환자였다. 탐의 주치의는 개발 중인 '신약(dexpramixole)'의 사용을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약효는 없었고 남은 것은 더 큰 절망뿐이었다. 신약개발 실패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실험용 질환생쥐가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적 변이를 거치기 때문에 좀 더 충분한 수의 생쥐 실험이 필요했고, 성별에 따라서도 질환의 진행이 조금씩 다르기에 암컷과 수컷 생쥐를 대상으로 균형 있게 실험했어야 함을 발견했다. 조급함으로 인해 기본적인 연구과정을 서두름으로써 개발된 신약은 돈과 시간의 낭비 그리고 더 깊은 슬픔의 원흉이 되고 만 것이다.

생명과학분야 연구자로서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30여 년 넘게 투자했으니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기초연구의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결코 길지 않은 역사다. 루게릭병 신약 개발처럼 성급한 조바심으로 적정 시간이 필요한 과정을 적당히 통과했다가는 어느덧 꿈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 연구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여유와 풀어 낼 시간을 줘야 한다. 연구자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30년 동안 해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한 도전 과정이 학문 후속세대에 계승되어 다음 세대에는 누군가 풀어낼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어 나만 아는 지름길은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기초과학이란 나무를 사막이나 자갈밭에 심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비 2배 증액이 목련꽃을 조금이라도 빨리 피우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