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 '단계적 비핵화' 제시 미국의 조건 '완전 비핵화'에 배치 체제보장·경제지원까지 요구할 듯 남북 - 북미 정상회담 변수로 작용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단계적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이 같은 날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시 주석과 함께 중국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중 정상회담… 무슨 얘기 나눴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라는 구체적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완전한 비핵화'와 배치되는 것으로, 향후 북미정상회담의 의제 조율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북미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만나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취한다면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선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는 비핵화에 대한 '조건'으로, 대북 제재 해제·경제적 지원·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체제 보장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는 없는 항목이었다. 북미정상회담 을 제의할 때 없던 '청구서'를 뒤늦게 내민 셈이다.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시 주석을 먼저 찾은 것은 미국에 이 청구서를 제시하기 전에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로드맵에 들어있던 것으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중국과 혈맹관계를 재건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현재 '재앙' 수준인 자국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북제재·압박의 취약고리인 중국을 든든한 배경으로 둬야 한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선 김 위원장의 제안에 미국이 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줄곧 강조하고 있다. 과거처럼 북한이 협상을 시간벌기용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단계적 비핵화 방안(군사훈련 축소·중단, 경제제재 완화·해체를 요구하며 핵 사찰 수용, 핵 시설 폐기 등을 약속)을 고집할 경우 미국이 회담 자체를 거부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가 "북한은 최대한 천천히 가려 하겠지만 북미정상회담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정부도 모라토리엄(일시중단) 단계에서 북한에 보상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단계적 비핵화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어떻게 다뤄 결정할지가 북미정상회담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6자회담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남·북·미 위주로 돌아가던 한반도 비핵화 정세는 다시 다자구도로 회귀해 모처럼의 응집력이 깨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