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선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임원선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임원선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정신없이 말을 달리던 인디언이 자신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잠시 멈췄다는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최근 몇 십 년간 다른 많은 분야가 그렇듯 우리 저작권도 숨 가쁘게 달려왔다.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돌아볼 것도 많다. 왜 그리고 어디로 달리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세탁기에 이어 철강까지 통상압력이 거세다. 미국은 1980년대에도 그랬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경쟁력이 약화된 자국 산업의 보호가 아니라 영화나 소프트웨어같이 잘나가는 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려던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저작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고 한국저작권위원회를 설립하는가 하면 국제조약에도 가입해 외국 저작물을 처음으로 보호하게 됐다. 시내 대형서점과 서울대 서점에 버젓이 있던 복사본 코너가 사라진 것도 이때였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떠밀리듯 강화되기 시작한 저작권이 1990년대 이후 우리 문화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에서 우리는 한류의 세계적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저작권이 강화되지 않았다면 우리 문화산업이 이렇게까지 탄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저작권은 지속적으로 강화돼, 이제 저작권 통상무대에서 저작권 보호시책에 관해 알고 싶으면 한국에 가보라는 얘기가 회자될 정도다.

하지만 돌아보면 저작권 강화가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고 손쉽게 이용허락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저작권 강조가 저작권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저작권 보호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문화와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을 향해 가기 위한 하나의 날개일 뿐이다. 제자리에서 맴돌지 않고 곧바로 날아가려면 이용활성화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람 즉, 이용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다수의 우발적이거나 비상업적인 침해를 악의적이고 상업적인 규모의 침해와 구별해야 한다. 이들에게까지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또 SNS에 올리는 UCC의 경우에는 상업적인 규모가 아니라면 개별 이용자를 대신해 포털과 저작권자 단체의 계약으로 일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저작권법의 존재를 몰라도 됐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겠지만, 온 네티즌이 저작권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할 필요는 없다.

저작권의 자동발생으로 생기는 문제에도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국제조약에 따라 저작권은 특허나 상표같은 산업재산권과 달리 등록하지 않아도 창작과 동시에 보호된다. 이 때문에 저작자가 원하지 않아도 저작권이 생기고, 이용자가 미리 허락을 받지 않으면 침해가 된다. 하지만 이용자는 어느 저작물의 저작권자가 보호를 원치 않는지 알기 어렵다. 손쉽게 권리자를 확인하고 이용허락을 받을 수 있는 거래시스템의 구축과 함께, 원하지 않는 권리를 받게 된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그 의사를 표시하도록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 법에 의해 생긴 문제이므로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저작권 표시방법이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과 활용도가 높지 않다. CCL 표시의 활성화와 함께 CCL이 표시된 저작물을 쉽게 찾아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불법적인 저작권 침해로 인해, 또는 '합의금 장사'라고 불릴 정도의 저작권자의 과도한 권리행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개인 창작자나 일인 창조기업, 어린이집, 소상공인 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의 상담을 넘어서서 계약서를 검토해주거나 부당한 주장에 대한 대처방법을 안내하는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법과 제도만이 아니라, 그 법과 제도를 활용하는 능력의 차이에서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이 있음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