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목돈 마련 부담감… 건설사, 공사자금 확보 관건 견본주택 확인 후 계약하는 선분양제 실제 입주 때까지 집값 나눠내는 방식 후분양제는 80% 이상 착공후 공급 정부, 공공부분 도입 후 민간 확대 계약자, 대출금 확보·이자 부담 전망 자금 능력 갖춘 건설사 쏠림 등 우려
올해 들어 아파트 후분양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후분양제는 지어질 집을 미리 보고 분양받는 게 아니라 거의 다 지어진 집을 확인한 뒤 분양이 이뤄지는 제도입니다. 현재의 분양 제도와 다르다 보니 여러 추측과 오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후분양제는 무엇인지 개념부터 이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후분양제 논의 본격화=현재 국내 주택 분양 제도는 2∼3년 전 미리 살 집을 견본주택(모델하우스)에서 계약한 후 새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집값을 나눠내는 방식입니다. 집값을 할부 형태로 미리 나눠 내고 완성되면 입주하기 때문에 선 분양제라고 표현합니다. 후분양제는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집이 완전히 또는 거의 지어진 뒤 분양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선분양제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약 2년간 나눠서 건설사에 지급, 저렴한 돈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지만 후분양제는 집값 대부분을 목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큽니다.
후분양제는 지난해 10월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 전면 도입을 제안한 뒤 김 장관이 '후분양제 공공부문 도입' 의사를 밝히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하며 공공분양주택부터 후분양을 단계적으로 늘린다고 밝혔고 민간분양주택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후분양 선택을 유도한다는 기본 방향을 내놓았습니다.
이후 올 초 중장기 주택수급 전망 등을 고려해 공공부문에 단계적으로 후분양을 시행하면서 민간부문 후분양 활성화 방안을 올 상반기에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초 국토교통부가 후분양제를 공공 부문부터 도입하겠다는 주택법 개정안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안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관련 공공기관도 본격적인 업무 정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LH는 공공부문 후분양제 아파트 1만 가구를 공급할 경우 시뮬레이션을 돌려 1조9000억원을 미리 조달해야 하고 금융 이자는 매년 731억원이 발생한다는 내용의 내부보고서를 만들었고 HUG는 후분양 건설사에 대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보증을 확대, 은행이 건설사의 대출 한도를 늘려줄 수 있게 했습니다. 공정률이 80%에 달하려면 사업비가 85% 이상 필요한데 건설사가 분양대금을 받는 시기까지 무리 없이 금융권 대출을 통해 사업을 이끌고 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후분양제를 둘러싼 논란들=후분양제를 둘러싼 논란은 분양가를 완납해야 한다는 점과 중도금 혜택이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후분양제를 반대하는 이들은 "건설사들이 금융비용 증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해 분양 원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땅값이 오르면 분양가는 높아집니다. 분양가는 현재보다 8% 가까이 오르게 돼 소비자 대출 이자 부담이 1000만원 전후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선분양제에서는 이 차익이 아파트 계약자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후분양제에서는 시행사나 건설사가 챙기게 됩니다.
아파트 계약자들은 계약부터 입주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내 한꺼번에 수억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선분양제에서는 해당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 신용을 빌려 분양가의 40∼60%에 이르는 중도금 대출을 연간 2∼3%대 저리로 받을 수 있지만 후분양제에서는 개인이 이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후분양 구조를 보면 계약금(20%), 중도금 1회(20%), 입주 시 잔금(60%)로 진행되기 때문에 부담이 아주 큰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완공 때까지 계약금이나 중도금 등을 받을 수 없어 건설 자금을 자체 또는 대출로 조달해야 합니다. 자금력과 브랜드 인지도,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에 비해 이자부담이 큰 중견 이하 건설사들은 분양 사업 자체를 뛰어들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중견 건설업체가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소 건설사를 회원사로 둔 심광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후분양제를 시행하면 자금력을 갖춘 일부 대형사 위주의 시장 독점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전체 주택 공급의 60%를 차지하는 중소업체의 공급이 끊어지면 주택 가격 상승 등의 시장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 업계에선 사업성이 충분하다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통해 투자회사로부터 직접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