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로 전환 금융산업 자율성 부여
사후 감독역량 강화하는 형태로 변해야
IT기술만 강조 말고 활용방안 고민 필요
경영진과 상관 없는 사외이사 선임해야


■ 혁신성장 2018
인터뷰-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세계 금융환경은 IT 신기술과의 융합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은 금융환경의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 정부는 기술과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혁신을 위해 현 금융정책 등을 진단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금융규제 개편과 디지털 신기술 활성화 등 과제발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금융산업을 옥죄고 있는 규제의 틀은 바뀌지 않고 있다. 금융산업 저변에 깔린 관치금융이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한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시장 안팎의 평가다.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은 금융산업의 성장을 담보하는 정책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포지티브(Positive) 규제에서 네거티브(Negative) 규제로 규제의 틀을 바꿔 금융산업 전반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당국도 사후 감독역량을 강화하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과 산업, 비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의 금융환경을 정밀하게 진단해온 윤석헌 위원장을 만나 금융당국의 방향성과 금융산업의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그동안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들을 검토해 보셨을 텐데요. 어떻게 진단하셨는지요.

"우선 위원회의 역할이 금융행정으로 제한된 만큼 금융행정 측면에 국한해 들여다봤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우리 금융행정에 오랫동안 작용하고 있던 관치금융이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금융당국은 큰 틀에서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해야 하고, 감독당국은 자율성을 갖고 금융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제재를 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규제 일변도로 나가고 있고, 관치가 이러한 분위기를 좌우하면서 금융산업의 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 금융행정혁신위가 희망했음에도 권고안에 담지 못한 과제는 무엇이고, 또 의도한 대로 담지 못한 부분이 어떤 것이었나요.

"규제의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금융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규제의 패러다임을 포지티브 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금융산업은 오랫동안 공고한 규제 아래에서 움직여온 만큼, 하루아침에 규제의 틀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로드맵을 만들어 순서를 밟아 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규제가 완화되면 이를 악용하려는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감독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금융환경은 감독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규제만 더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감독체계를 고쳐야 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정책기능과 감독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감독기능을 떼어내 독립시켜야 감독이 정책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 10개월이 됐습니다. 그동안 금융을 독립적인 산업으로 보지 않고 핵심 산업의 보조장치쯤으로 보는 '금융 홀대론'이 많이 제기돼 왔는데, 현 정부의 금융정책 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요.

"가장 눈에 띄는 정책적인 변화는 가계부채에 대한 부분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가계부채에 대해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고 컨트롤해 왔습니다. 성과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만, 빚을 통한 경기부양은 중단하고, 부동산 문제도 여러 방안을 찾고 있는 곳으로 판단됩니다. 주목할 점은 개인의 상환능력을 대출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 점입니다. 큰 틀에서 총량을 관리하고, 미시적으로 개인의 상환 역량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업활동에 자금을 지원하는 생산적금융과 서민을 위한 포용적금융도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다만 속도조절이 필요해 보입니다. 양적인 측면에서 신생기업이나 벤처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관련 산업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산업의 방향을 바로 잡는 질적인 지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금융사들의 지배구조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위 권고안에 담겨있지만, 구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은행들은 특정 대주주가 없고, 소액주주로 구성돼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을 집결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경영진이 은행을 좌지우지 하는 지배구조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들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최고경영자와 연결고리가 있을 수밖에 없어 경영진에게 반기를 들 수 없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최고경영자와의 이해관계가 없는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추천해 선임하면 경영진을 밀도 있게 감시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경영권에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1~2명의 사외이사로는 이사회를 주무를 수 없습니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는 강화하면서, 이사회 룰 안에서 논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하나금융과 KB금융의 지배구조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금융은 금융당국과 갈등을 벌이는 양상입니다. 이들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하나금융이든 KB금융이든 중요한 자원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상당한 공공성을 지닙니다. 특히나 대주주가 없기 때문에 능력이 있는 인물이 CEO를 맡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더욱 시스템이 중요한 데 현재는 최고경영자가 참호를 구축하고 연임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잘못된 점입니다. 이처럼 시스템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면 감독당국이 지적해야 합니다. 금융지주사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면 국가적 손실이 되기 때문에 지배구조 문제에 있어서도 잘못된 점이 있다면 감독당국이 지적할 수 있고, 이를 금융지주사는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금융사들은 디지털과 글로벌 진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양적인 성장에 집중된 모습입니다. 우리 금융산업이 디지털 및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요.

"금융당국과 금융사 모두 디지털을 말할 때 IT 기술인 하드웨어 부분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즉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지급결제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 금융산업도 오롯이 지급결제로 가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즉 빅데이터와 AI, 블록체인 등 디지털 신기술도 중요하지만, 이는 거래 편의성에 대한 측면이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 금융사들이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로 진출하는 국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지 기업과도 금융거래를 확대하는 등 현지화를 하게 되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입니다. 아울러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금융허브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자산운용 역량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조은국기자 ceg4204@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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