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가입국가 통계 중 우리나라가 불명예를 안고 있는 부문들이 다수 있다. 자살률(16년간 1위), 초미세먼지 노출도(1위), 저임금 근로자 비율(2위), 근무시간(2위), 노인 빈곤율(1위), 출산율(최저수준)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마다 경제 및 사회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OECD 통계의 단순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들은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국가적 과제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안전도 그 중 하나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안전사고로 인한 우리나라 사망자 수는 2만8218명, 안전사고 사망률은 12.8%(OECD 34개 국가 평균 6.6%)로 OECD국가 최하위 수준이다. 꼭 OECD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그간 우리 국민이 겪어온 각종 재난과 안전사고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최근 연이은 대형 재난 및 안전사고 이후 정부가 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안전대책을 마련함에 있어 과거에 고려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고려해야할 사안이 있다. SW오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예방이 그것이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는 급속하게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넓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동인은 SW이며 SW에 대한 의존도와 복잡성 증가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이다. 이는 SW오류로 인한 안전사고의 증가를 의미한다. 특히, 항공, 철도, 원자력, 자동차 등 국민의 안전과 밀접한 분야에서의 SW오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인명 사고로 연결될 위험이 높다.
사실 SW오류로 인한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SW가 주요 기간시설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꾸준히 증가해 오고 있다. 1996년 64비트 정수를 16비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SW오류로 유럽의 상용 우주선이 발사 40초 만에 폭발했다. 2003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에너지 관리시스템(EMS)의 오류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0개 이상의 공항이 잠정 폐쇄됐고 22개 핵발전소가 3일간 가동이 중지됐다. 경제적 손실은 무려 6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됐다. 2009년에는 렉서스 차량 급발진 사고로 인한 4인 가족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전자제어장치(ECU)에 내장된 SW의 오류가 사고원인으로 지목됐다. 도요타는 기소유예를 조건으로 미 법무부로부터 12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2016년에는 테슬라 자동차의 운전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신호 시스템의 오류로 열차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사고로 388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었다.
SW오류로 인한 안전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유럽 등 세계 주요국은 이미 산업별 국제표준(자동차 ISO26262, 항공 DO-178C, 철도 IEC62279 등)을 제정했다. 이를 기반으로 각국의 상황을 반영한 법제도를 마련하여 안전중요 시설의 SW안전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SW에 대한 의존도 증가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철도 등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SW 안전 확보에 대한 법제도가 아직 미약한 상황이다. 우선적으로 주요산업 및 부문에서 SW안전관리 대상의 지정, SW 생애주기(개발, 인증, 운영 등) 상의 안전 확보, SW안전 기술 연구 및 지원을 위한 전문기관 지정 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By failing to prepare, you are preparing to fail)."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안전대책 수립과 법제화 관련해 매우 의미 있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안전사고 예방 대책은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사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많은 물질적, 인명 손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