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안갯속'
기관, 인건비 마련 등 운영 고심
전환규모·방식 싸고 내부갈등도
PBS 개선없이 무리한 추진 지적
인건비 문제로 기관운영 불안정
연구자 취업난·해외 이탈 우려
노노갈등 등 결속력 강화 과제

이슈분석
출연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안갯속'


"2∼3년 뒤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 월급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과학기술 분야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원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상황을 설명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확정되지 않아 앞으로 경영 환경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노조는 모든 비정규직을 1대 1로 평가해 기준만 통과하면 전원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 비정규직 전환 내부 갈등 커져=19일 업계에 따르면 출연연 연구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기관 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인건비 마련 등 운영 방안에 고심하고 있고, 전환 규모와 방식 등을 두고 조직원 간 내부 갈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5개 출연연 비정규직 약 6400명 중 상시·지속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과 연구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 폭발물·유해물질 처리 등 위험성 있는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계획에 따르면 각 출연연은 지난해 말까지 전환 규모와 일정, 방식 등 전환 계획안을 과기정통부에 제출키로 했다.

그러나 현재 전환계획안을 제출한 출연연은 녹색기술센터,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5개 기관뿐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기관별로 현재 정규직 전환 대상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이의 신청을 미리 받고 설명하는 절차 등을 추진하면서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현장에서는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부는 별도 예산 지원 없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전체 출연연의 계획안 제출이 마무리되고 전환 규모가 산출되면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나,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그동안 출연연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통해 동일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가 거의 같아 추가적인 재원 소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가 다양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게 기관 측 주장이다.

◇비정규직 양산 구조부터 뜯어고쳐야=출연연에 비정규직이 양산된 근본 원인인 '과제중심운영제도'(PBS)를 손보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연연은 PBS 제도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하는 출연금 외에 정부 수탁 과제를 수행해 인건비를 충당하고 있다. 과제를 따지 못하면 인건비를 줄 수 없어 과제 단위로 기간제 비정규직 연구원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1996년 PBS 제도 도입 이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과 과제 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그만큼 정원(TO) 확대가 따라주지 못했다.

이후 정부가 비정규직 비율을 제한하면서 이번엔 학생연구원과 연수직 등이 모자란 자리를 메웠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 없이 일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건비 문제로 기관 운영이나 연구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신규 임용이 어려워져 연구자들이 취업난을 겪거나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이미 현장 연구책임자들의 고민이 크다"며 "자신이 데리고 연구하는 정규직 연구자가 배로 늘면서, 그만큼 과제를 계속 가져올 수 있을지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갈등을 수습하고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일도 과제다. 현재 몇몇 기관에서 노조와 기관 측이 마찰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비정규직 내에서도 기간제, 파견직, 위촉연구원 등 다양한 고용형태로 일하고 있어 의견 수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기존에 근무하던 정규직 직원들도 형평성 등을 두고 반감을 드러내며 노노 갈등도 우려되고 있다.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을 두고 조직원마다 모두 생각이 다르다"며 "갈등 소지를 줄이고 정규직 대상자들을 안착시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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