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지역 3개 구청이 재건축 단지 관리처분계획안을 한국감정원에 맡겨 정밀 검증하라는 정부의 권고를 듣지 않고 자체 처리하겠다고 나서 정부와의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양측 다 속내를 잘 보이려 하지는 않지만 정부는 어떻게든 재건축 추진 과정을 꼼꼼하게 검증해 잘못된 것은 가려내고 싶어하는 반면 구청은 민원 때문에 이런 정부의 요청을 비켜나가려 애쓰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양측간 미묘한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송파구청은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잠실미성·크로바아파트와 진주아파트의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감정원 검증의뢰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송파구는 국토교통부의 권고에 따라 이들 세 아파트의 관리처분계획안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감정원에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강남구와 서초구가 재건축 단지의 관리처분인가 계획안 검토를 자체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자 송파구도 뒤늦게 다른 구청의 행보를 따르기로 했다. 이날 송파구는 자체 검증의 이유로 비용 문제를 들었다. 미성·크로바 4000만원, 잠실진주 4500만원인 검증 수수료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주민의 민원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감정원이 꼼꼼하게 검토하다 덜컥 보류 결정이라도 내리게 되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류된 단지는 단순히 사업 속도가 늦춰지는 것뿐만 아니라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대상이 되면서 수억원대의 재건축 부담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이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나 서초구와 달리 송파구만 정부 뜻대로 감정원 정밀 분석을 의뢰하는 게 부담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구청이 자체 검토하면 감정원보다는 아무래도 기준이 느슨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송파구의 의뢰를 받고 지난달 말부터 잠실 진주 등의 관리처분계획 타당성 검토를 진행 중이던 감정원도 당혹해 하고 있다.

감정원 관계자는 "한 달 정도 걸리는 타당성 검토를 2주 정도로 줄여달라고 해서 야근까지 하며 속도를 낸 덕에 이번주 말이면 (타당성)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다"며 "오늘 오전 갑작스러운 송파구의 철회 공문을 받고 검증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정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은근히 강남 3개 구청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꼼꼼히 처리할 것을 주문하며 적잖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근 구청 관계자를 소집해 재건축 부담금 산정과 관리처분계획 서류 분석 업무를 엄정히 처리하도록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논란이 된 감정원 타당성 의뢰 방안도 제시했다.

송파구가 비용 문제를 들며 감정원 의뢰를 취소한다고 하자 국토부는 순순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송파구청이 비용이 부담된다고 하면 공짜로 해주라고 감정원에 주선했다. 그러나 송파구청은 이를 거절했다. 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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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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