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지난 연말에 확정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혹한으로 계속 치솟던 전력수요가 결국 25일에는 사상 최대인 87.25GW를 기록했다. 1월에만 5차례의 급전지시를 통해 2700여 개 공장의 조업을 강제로 중단시켰지만 역부족이었다. 최악의 추위가 들이닥친 26일에도 전력 수요가 87.20GW를 기록했다.

7차 기본계획보다 3GW보다 낮춰 잡은 85.20GW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탈원전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2016년 8월의 전력 수요가 85.18GW를 기록했던 사실을 의도적으로 빼버리고, GDP 성장률을 하향조정했다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현재 11.2%인 소규모 분산형 전원의 비중을 2035년까지 18.7%로 확대하겠다는 8차 기본계획의 목표도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다. 대량의 화물을 철도 대신 소형 화물차로 분산시켜 운송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발상이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기 마련이다. 철도의 대형 사고와 대규모 오염도 무섭지만, 소형 화물차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작은 사고와 소규모 오염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소형 화물차의 안전과 오염 관리는 철도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고, 효율성·경제성도 떨어진다.

해안가의 대규모 발전단지에 대형 원전과 석탄화력을 집중시키는 정책이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와 부담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장거리 초고압 송전망에 대한 거부감도 나무랄 수 없다. 원전이 집중돼 있는 고리와 월성, 석탄화력의 절반 가까이가 모여 있는 충남의 사정은 특히 심각하다. 대형 발전·변전·송전 설비에 의한 위험과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배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규모 발전단지 운영을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연료·발전용수의 공급과 송·변전 시설을 공유할 수 있는 대규모 발전단지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 있다. 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초고압(765kV) 송전선로를 통해 송전 과정에서의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대형 발전소가 전압·주파수·위상 등 전기의 품질 관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규모 발전단지를 통해 실현되는 경제성과 고품질의 전기는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장점이고, 그 혜택은 전 국민과 산업계에 고르게 돌아간다.

분산형 전원의 경제성도 불확실하다. 분산형으로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 소비가 많은 대도시 주변의 발전·송전·배전·변전 시설에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1985년 서울의 목동에서 처음 시작해서 적지 않은 투자를 계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집단에너지(LNG 열병합) 사업에서 확실하게 경험했던 일이다. 집단에너지의 환경성도 보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전력 생산의 경제성을 무시할 만큼 넉넉한 것은 아니다.

전력의 생산·소비를 지역적으로 분리시켜서 발생하는 장점도 포기하기 어렵다. 분산형 전원 확대는 대신 집집마다 싸구려 소형 발전기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싸구려 소규모 발전기의 에너지 효율과 오염 방지 효율은 신기술을 활용한 대형 발전기보다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구밀집 지역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해결하는 일도 절대 쉽지 않다. 배려해야 할 주민의 수도 늘어난다. 결국 분산형 전원 확대는 사회적·경제적으로 훨씬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강화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지역적으로 분산된 소규모 발전소와 송배전 설비가 늘어나면 전력망이 복잡해지고, 따라서 효율적·안정적 관리도 어려워진다. 특히 독립된 소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의 주파수와 위상을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전기의 품질이 떨어지고, 공급이 불안정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자칫하면 정밀기계·전자 산업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태양광·풍력 확대와 함께 분산형 전원 확대 계획도 근본부터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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