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우리는 늘 새로운 다짐을 한다. 쌓인 먼지를 떨어내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2017년은 대통령 탄핵, 북한의 ICBM 핵 개발과 안보 위협,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취업난 등 우리 마음을 짓누르는 수많은 일들로 점철된 한 해였다. 그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지만, 그건 어려워 보인다.
현실을 한번 직시해 보자.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지 25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첨예한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거기에 최근 중국의 세계화 전략이 미국중심의 국제질서와 부딪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미 가시화됐으나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경제대국 중국의 부상으로 조선, 철강, 제조업의 성장기반이 무너졌고, 이제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IT산업조차 위협받고 있다. 이렇듯 한국경제의 비교우위가 하나 둘씩 소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장전략은 여전히 관념적 탁상논리에 의존한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차치하고라도, 대안정책인 혁신주도 성장조차 구체화된 혁신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기본 기능이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임에도 불구하고, 재해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세월호 사고의 뼈저린 아픔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웠던가. 그 이후 국가차원의 재난관리 체계는 제대로 정비됐는가. 재난망 구축으로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은 현재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가. 혹시 잘못된 진단과 처방이 반복되면서 문제가 해소되기 보다는 그저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정서는 어떠한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공중질서는 외면한 채 공정, 정의, 평화라는 관념적 가치에만 너무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실패도 배 아프나 남의 성공에 더욱 배 아파하는 것은 아닌지.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 동료, 친구, 공동체 구성원을 모두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트코인으로 누군가 떼돈을 벌었다는 소식에 박탈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 그 모든 고통의 책임이 내가 아니라, 남에게 있다면서 동료, 상사, 조직, 회사, 사회, 국가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한번 생각을 바꿔 보자. 이러한 모습이 과연 실체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성장을 이룩해 냈고, 북한의 핵보유에 대응해 스스로 핵개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력도 확보하고 있으며 중국에 맞서 선제적으로 글로벌 생산 및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우리의 경제영토를 확장해 왔다. 이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의 잠재성을 높게 평가해 전국민적 학습열풍이 불고 있고, 정부의 지원과 보호없이도 스스로 세계 최고의 뷰티산업과 K-콘텐츠 시장을 만들어 냈다.
내용면에서는 반복되는 재해와 재난 속에서 더디기는 하나 자성과 사회적 학습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자립을 돕는 참여형 사회혁신 운동이 대학가와 벤처집적 단지 등을 중심으로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아직은 미약해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이런 자발적 변화의 조짐이야말로 앞으로 우리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힘의 원천이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참된 인류애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와 시장경제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따뜻한 사회를 일구어내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매우 희망적이다.
희망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법. 성장이 멈춘 숲의 고목나무 아래에는 간간히 비추는 햇볕만으로도 몸을 빠르게 키우고 있는 수많은 어린 싹들이 있다. 작고 연약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조만간 병든 고목을 대신해 풍요로운 숲을 책임질 신세대들이다. 작은 햇볕을 쬐고자 치열하게 자리경쟁을 하며 생존력을 키워가고 있는 그들이 잘 성장하도록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바로 우리 기성세대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세대 스스로도 자각과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2018년이 바로 그 대전환의 한 해가 되리라 기원하면서 새해를 힘차게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