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진통 끝에 428조8339억원의 내년 예산안을 확정한 가운데 정부 행정업무와 서비스 혁신에 투자하는 전자정부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1215억원, 작년 1237억원, 올해 1263억원에 달하던 예산이 870억원으로 1년만에 400억원 가까이 감액된 것이다.

특히 전자정부 사업을 주관하는 행정안전부가 정부예산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올해보다 27.6% 줄여 신청한 상황에서 국회가 비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5%를 추가 감액했다고 한다. 행안부가 예산을 줄여서 신청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다. 내년에 차세대 시스템 구축 밑그림에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 실제 시스템 구축예산을 줄였기 때문이다.

행안부는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 구축, 차세대 주민등록시스템 구축, 지능형 전자정부 표준플랫폼체계 구축, 국가전자조달 전면 개편 등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과제 수를 크게 늘렸다. ISP 사업은 올해 4개에서 내년에 12개로 늘어났다. 행안부 계획대로라면 내년은 전자정부 예산이 줄어들더라도 수립한 계획이 본격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지는 내년 이후부터는 예산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 국회가 예산을 5%나 더 줄인 과정은 이해하기 힘들다. 국회의원들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자정부 사업 낙찰률이 평균 92%니 예산을 5% 깎아도 사업에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내렸다고 한다. 그 결과 특정 사업과제가 무산되거나 취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사업 예산 중 5%를 골고루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이렇게 예산을 낮춰도 실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기업들이 가격 경쟁을 하다 보면 낙찰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는 결국 5% 예산 감액이 사업 차질이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국회의 예산 감액 논리는 시장의 특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국회와 정부가 혁신성장을 외치면서 예산편성은 이런 논리로 한다면 점점 더 중소 IT업체들의 사업환경은 열악해질 수밖에 없고, 일자리도 기업들의 임금 인상도 어려워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공공 시장이 마중물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전자정부를 비롯한 혁신 영역에 대한 투자를 계속 줄이면서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신사업과 신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이 공공영역에 의존하는 부분이 큰 게 현실이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정 후 국내 기업들의 12%가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올해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개발된 애플리케이션만 1300개에 달한다.

개인정보보호 등 너무 과도한 규제는 풀고, 공공데이터를 민간에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보화사업과 혁신사업은 제대로 된 대가를 주고 적정한 투자를 해야 혁신성장이 가능하다. 기업들이 공공에서 기회를 찾아 다른 사업기회를 발굴하고, 기술을 축적하는 동시에 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선순환 생태계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줘야 한다.

예산절감은 더 이상 혁신성장 시대에 미덕이 아니다. 기업들이 임금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장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를 힘들게 하면서 최저임금 보전, 비정규직 인력 단속 등 복잡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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