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리 머리에 각인된 노동에 대한 두 가지 편향 시각을 돌아보게 만든다. 첫째, 과연 노동은 고역일 뿐인가 하는 점이다. 즉 '먹고 살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둘째, 노동은 과연 자본에 착취당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의식으로 인해 우리 노동계는 자본에 대립해 끊임없이 더 많은 몫을 쟁취해야만 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파괴력을 지니게 된 터였다.
철학, 정치학, 사회학, 법학, 경제학 등 다양한 전공의 저자들은 자신의 전공에 맞춰 다각도로 노동의 '실존'을 짚는다. 저자들이 도달한 노동에 대한 공통된 시각은 '자유주의 노동'이다. 자유주의 노동은 타의에 의하지 않는 자발적이고 즐거운 노동이요 자본과 대립하는 노동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자유로운 노동이다.
저자 남성일은 서문에서 "대한민국은 시장경제 시스템으로 경제가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기본원리가 무시되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특히 생산요소의 경우 자본의 역할은 지나치게 과소평가되는 반면 노동은 필요 이상으로 과대 평가되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경제가 이루어온 양적, 질적 성장에 기여한 자본의 중요성은 애써 무시되는 반면, 경제적 성취의 모든 원천은 노동에 있는 것처럼, 그것도 자본의 착취에 의한 노동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은 여전히 종속노동, 착취노동이라는 도그마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는 인식구도에 갇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들은 지난해 3월부터 '자유노동연구회'를 만들어 매월 1회 이상 각자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나누는 모임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모임과 두 차례 가진 워크숍의 결과물이다.
먼저 역사 속 노동의 의미를 살펴본다. 1부 1장에서 김인영은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노예제 시대에서 노동이란 천한 노예가 하는 일상적 행위일 뿐이라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고 밝힌다. 노동이 본격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17세기 존 로크의 소유권으로서 노동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명예혁명으로 시민이라는 개인이 정치적 주체로 대두하면서 그 개인의 노동과 노동의 소유권이 주장된다.
2부에서는 한국 자유노동이 처한 현실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제4장 '시장 중심의 노동'에서 살펴보면, 사회주의가 몰락했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노동자와 자본가 권력을 대립시키는 사고를 가진 교육과 선전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를 적대적 관계에 놓고 신분제적 착취관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논리에 따르면 현재 취업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오히려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처지가 된 것이 아니냐고 시니컬하게 반문한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었는데도, 사회주의 체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서는 그 출발점을 완전실현설과 노동가치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바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최승노는 노사관계가 갑을관계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기업이라는 작은 배를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탄 공동 운명체라고 표현하며 노사관계에 대한 편견의 교정을 시도한다.
노동이 개인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시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며, 우린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5장, 6장에 이어 개인 스스로가 의미 있는 노동을 만들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부터 한국의 노동법에서 변화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제3부에서는 다가올 노동시장과 자유노동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히 남성일은 제7장에서 일의 미래에 대한 세 가지 이슈를 토대로, 디지털 경제로 인해 일어날 일자리와 고용관계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 미래의 노동은 일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만큼 더 많은 이들에게 자유와 기회를 줄 것이라 한다. 기계화로 인한 생산성 증가로 인간은 기계적인 반복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감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롭고 유연한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8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격변이 유발하는 일자리 증발에 대비한 안심소득제를 개진한다. 지난해 이후 스위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도입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량 실업 시대에 국민에게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설계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자칫하다가는 금세 재정이 바닥나고 경제 파탄을 가져올 수 있다. 저자 박기성은 '안심소득제'를 제안한다. 국가가 소득이 전혀 없는 가구에게는 일정액을 지급하고 근로나 사업 소득이 조금이라도 있는 가구에게는 그 소득에 반비례해 추가 지원을 하는 방안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음소득제(NIT; Negative Income Tax)와 보편적 소득제를 절충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노동이 짐이요 과중하고 고역인 사람들, 또한 일자리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자유노동'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규화 선임기자 david@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