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지리산 구례. 한 집 건너 집집 마다 주홍빛 감들이 탐스럽다. 그곳에 감으로 유명한 농사꾼이 있다. 바로 김종옥(60), 서순덕(54) 씨 부부. 25년 전 부부는 감 농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감이라면 대한민국 일등'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바야흐로 감 수확 철, 4대 가족이 가장 바쁜 시기다.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부랴부랴 감을 수확해야 하는데, 86세인 1대 어머니부터 2대 종옥 씨 부부, 그리고 3대까지 감나무밭으로 총출동, 구슬땀을 흘린다. 가지마다 탐스러운 감, 혹여 상처라도 날까 봐 노심초사 아기 다루듯 지은 1년 농사. 가지 많은 감나무집에 올해도 바람 잘 날 없는 가을이 왔다!감나무집 4대, 집안을 꽉 잡고 있는 세 여자가 있다. 1대 여장부 오옥순(86) 할머니. 구례 산골에서 육 남매를 둔 억척 엄마는 평생 일욕심이 많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곳곳 안 다닌 곳이 없었고, 동네 씨름대회마다 청년들의 무릎을 꿇려 '오장사'라 불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기억이 가물가물, 가족들의 걱정이 크다. 할머니 당신은 평생 몸에 밴 바지런함으로 일을 하지만, 가을들에서 쑥을 찾고 한창 익어야 할 감을 가지째 가져와 당신 방에 걸어놓으니 보는 이마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 시도 때도 없이 캐온 나물을 집안에 펼쳐놓고, 심지어 일손을 거들겠다며 선별된 감을 뒤섞기도 한다. 여기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2대 며느리 순덕 씨뿐이다.
4대가 사는 감나무집의 실세는 누가 뭐래도 2대 며느리 순덕 씨다. 지금의 1등 감농사를 짓고 집안을 일으킨 것도 순덕 씨 부부 때부터다. 36년 전, 열여덟 여수 아가씨는 구례 총각을 만나 늘 그렇듯 첫눈에 사랑에 빠져 구례 산골까지 왔다. 농사도 처음, 살림도 처음이었던 순덕 씨, 서슬 퍼런 시어머니는 젊은 며느리의 친정 나들이도 언짢아하셨다. 풀어놓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 시집살이, 그 세월 다 지나 순덕 씨도 어느덧 며느리 둘을 뒀다. 4대 가족이 함께 감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지만, 큰살림 부담을 주기 싫어 순덕씨는 합리적 분가를 시켰다. 2대 순덕씨 부부는 작은아들 내외와 한 지붕 아래 살고, 1대 시어머니는 3대인 장남네와 함께 살고 있다.
가을날 감나무집 4대, 1년 동안의 수고를 거두는 계절- 미우나 고우나 감나무집 며느리로 살아온 세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대동단결한 감나무집 여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지영기자 kjy@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