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제정 길이·질량 표준 '국제원기'
물리학 기본상수 기준으로 바꿔 객관화



지난 130여 년 동안 전 세계 저울추의 표준으로 사용해왔던 '국제원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프랑스 세브르에 있는 국제도량형국(BIMP)이 내년 11월의 국제도량형총회(GCPM)에 내놓을 '국제표준단위'(SI) 수정안이 확정되면 그렇게 된다. 앞으로 킬로그램은 국제원기가 아니라 물질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기본상수인 '플랑크 상수'(h)를 통해 정의된다. 그렇다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저울추를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국제표준단위는 1793년에 처음 만들어진 '미터법'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지구'를 기준으로 만든 '자'와 '저울'을 만드는 것이 화학·천문학으로 산업혁명을 선도하던 프랑스 과학자들의 꿈이었다.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으로 지구의 둘레를 4만 '킬로미터'(㎞)로 정하고, 가로·세로·높이가 1미터인 상자에 들어있는 온도가 섭씨 0도(물의 어는점)인 물의 질량을 1,000 '킬로그램'(㎏)으로 정했다.

1889년에는 '국제원기'(international prototype)를 표준으로 하는 미터법이 제정됐다. 백금 90%와 이리듐 10%의 합금으로 30개의 '미터 원기'와 40개의 '질량 원기'를 제작했다. 우리도 국제도량형국에서 제작한 공식 '국제원기'를 가지고 있다. 미터법을 시행하기 위해 1894년에 처음 구입했던 미터 원기(고유번호 10c)와 질량 원기(고유번호 39)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현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1993년에 도입한 질량 원기(고유번호 72)가 국가 표준이다. 만약을 대비한 보조 원기(고유번호 84)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제작한 원기는 아무리 조심해서 취급해도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마모가 되기도 하고, 공기 중의 먼지가 달라붙기도 한다. 특히 공기 중의 수은이 원기의 표면에 노출된 백금에 달라붙어서 질량이 바뀌게 된다. 2015년에는 프랑스에 있던 질량 원기의 원본이 2012년에 비해 36마이크로그램이 가벼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오늘날의 국제표준단위에서는 시간·길이·질량·온도·전류·물질량·밝기를 나타내는 7개의 '기본단위'와 기본단위를 조합해서 만든 힘·에너지·압력·전압 등 20여 개의 '유도단위'를 사용한다. 그동안 국제도량형국에서는 정확하고 보편적·객관적인 표준으로 기본단위를 정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67년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초'의 기준을 하루의 길이(8만6400초)에서 세슘-133의 초미세 상태에서 방출되는 복사선의 주기로 변경했다. 1983년에는 국제원기의 길이로 정의하던 '미터'(m)의 기준을 진공에서 빛이 진행하는 거리(2억9979만2458m)로 바꿨다. 1979년에는 밝기의 단위인 '칸델라'(cd)의 기준도 붉은색인 540THz의 단색광으로 변경했다.

이제 킬로그램(kg) 이외에도 온도를 나타내는 '캘빈'(K), 전류의 양을 나타내는 '암페어'(A),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mol)에 대해서도 물리학의 기본상수를 이용한 새 기준이 도입된다. 보편성·객관성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하는 현대 과학의 꿈이 완성되는 것이다.

1743년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기준으로 정의했던 온도의 단위인 캘빈은 열에너지를 나타내는 기본상수인 볼츠만 상수 k로 새로 정의된다. 전류의 단위 암페어의 기준도 전자의 전하량으로 바뀐다.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의 기준도 탄소-12가 아니라 정확하게 정의된 아보가드로 수 6.022140857×10(23)으로 변경된다.

국가의 표준을 관리하는 기술도 고도화된다. 단순히 원기를 정성껏 관리하는 전통적인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국가표준의 관리 능력이 '키블(와트) 저울'과 같은 첨단 측정 장비를 개발·운용하는 기술력으로 결정된다.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하면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자와 저울을 써야 하는 신세가 돼버린다. 노벨상은 물론이고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도 불가능해지고, 국제 교역도 어려워진다. 다행히 한국표준연구원이 2012년부터 키블 저울의 개발에 착수해서 내년까지는 세계 5위권의 정밀도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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