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지면 '코닥' 전철 밟는다" 디지털금융 사활 '은행권 공동오픈플랫폼' 구축했지만 참여 저조 모바일·AI 등 기술확보 치중 폐쇄적 모델 한계 한국형 오픈 API 도입 등 당국 제도 지원 필요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보고서
국내 은행들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은행의 디지털 전환은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혁신과 정부의 정책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최근 '국내 은행의 디지털전환 필요성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들이 디지털금융 전환에 소홀할 경우, 하루가 다르게 급변화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나락의 길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국내 은행들이 미래 금융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금융규제를 과감히 개선하는 작업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디지털금융, 뒤처지면 '코닥 모멘트' 직면한다"= 디지털화는 사회 모든 분야를 급속하고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이후부터는 보다 빠른 디지털 격변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 추세에서 뒤처진 기업들은 성장에서 도태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2012년 파산한 코닥이 대표적인 모델이다. 코닥은 기존 아날로그 시장에 안주해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따라가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업이다. 코닥은 필름 카메라의 1위 기업으로, 사진으로 남겨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을 의미하는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만큼 영향력이 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코닥은 1975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만들고도, 디지털카메라가 130년간 이어온 자신들의 필름사업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최고의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고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안소니 젠킨스 전 바클레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빗대 "은행이 블록체인 등 핀테크 개발에 뒤쳐지면 '코닥 모멘트'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코닥 모멘트라는 단어가 디지털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순간을 의미하는 냉혹한 단어가 돼 버렸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은행들도 코닥 모멘트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 개발자가 쉽게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오픈 API를 제공하고 그들과 협력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픈 뱅킹' 체계를 도입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내년부터 은행이 제3자 결제서비스 및 계좌통합 업체에 오픈 API를 제공해야 하는 'PSD 2' 규제가 시작되고, 일본도 이미 지난 5월 은행법을 개정해 은행이 오픈 API 구축에 적극 나서도록 의무화 했다.
◇"국내 은행 폐쇄적 모델에서 벗어나 혁신해야"= 국내 시중은행들도 2~3년 전부터 디지털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디지털금융 전략에 사운을 걸고 있다. 생채인증을 활용한 모바일 뱅킹, 로보어드바이저,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등 다양한 방식의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말에는 세계 최초로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을 구축, 서비스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권 공동 오픈 플랫폼의 경우, 참여 기업이 많지 않고 보안상의 우려로 인해 은행이 제공하는 API의 범위가 단순 조회 위주로 한정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류 연구위원은 "개별 은행들도 플랫폼 중심의 사업모델 구축과 같은 총체적인 디지털 전환이라기 보다는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기술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며 "기술 발전이 빨라 관련 인력의 역량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가치 창출을 위한 개인정보 활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류 연구위원은 "이외에도 고착화 된 레거시 시스템, 유연하지 못한 조직구조, 외부와 협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도 국내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이 더딘 이유"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국내 은행이 코닥 모멘트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개방형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금융당국도 해외 오픈 API 정책을 바탕으로 국내 실정에 맞는 유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류 연구위원은 "국내에는 우수한 IT기술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망, 글로벌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소비자가 존재한다"며 "국내 은행들이 이같은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과감히 디지털 전환에 나선다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렌드는 더 이상 생존의 위협이 아니라 경쟁력 제고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