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
정용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
정용환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


25년전 우리는 몰래 설치한 카메라를 통하여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TV프로그램을 봤다. 주인공의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은 뒤로한 채, 진솔하고 꾸밈없이 노출된 장면에 우리는 색다른 유희를 경험했다. 이렇게 웃음의 코드로 다가온 몰카는 그 활용의 경계를 확장하면서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 몰카는 여성의 성(性)을 그 대상으로 지하철이나 터미널 등 다중이용시설의 화장실이나 계단·에스컬레이터는 물론이고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생성되고 있다. 덫을 놓고 훔쳐보는 공격적인 불법촬영이 별다른 범죄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반려견을 살피려 설치한 IP 카메라(홈 CCTV)의 해킹사건이나, 몰카사진 사이트를 개설하고 200만 명의 회원을 모아 14억 원의 수익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힌 소식 등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몰카는 이전의 단순한 몰카가 아니라 명백한 범죄행위가 됐다.

이렇게 불법촬영된 영상은 디지털파일로 재생산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무한 확산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몰카 동영상이 유포되어 누나가 목숨을 끊었다"며 "고인에 대한 예의로 더 이상 유포되지 않도록 해당 동영상을 지워 달라"는 부탁의 글이 올라왔다. 대체로 영상 속 주인공은 해당 파일을 삭제하고자 한 달에 몇 백만 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소위 디지털장의사(동영상 삭제업자)를 고용해 해당 동영상을 없애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은 물론 끝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범정부적·사회적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었는바, 금년 5월 대통령 선거 시 국민공모 10대 공약사항으로 '몰카 및 리벤지 포르노 유통근절'이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서 정부는 몰래카메라 등의 불법촬영물을 뿌리 뽑기 위한 강도 높은 범정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도 지난 9월 7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몰카 유통방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인터넷 포털기업과 웹하드사업자 및 법무부, 여성가족부, 시민단체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몰카 동영상을 인터넷상에서 근절하기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모니터링 강화 및 관련 기술개발에 대해 논의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범부처적인 협업을 통한 근절을, 사업자들은 자율적인 규제를 약속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9월 26일 14개 관계부처와 함께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와 같은 불법촬영 및 유포 등의 행위를 '디지털 성범죄'로 정의하고, 몰카라는 약칭이 장난스러운 유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해 불법행위임을 강조한 '불법촬영'이라는 용어로 명명했다. 이번 종합대책에는 불법촬영물의 판매·촬영부터 최종 피해자 지원에 이르기 까지 디지털 성범죄 전 과정에 걸쳐 단계별 개선방안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따른 국민의 불안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적극 지원하며, 추가적으로 몇 가지를 제언코자 한다. 첫째는, 금번 발표된 종합대책이 일시적인 단발성 정책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올해를 불법촬영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각 부처별 정기적인 점검·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디지털성범죄가 발본색원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불법촬영물을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자는 각각 카메라촬영죄, 음란물유포죄로 처벌되는데, 해당 동영상을 보는 행위까지도 범죄일 수 있다는 국민의식의 확립·확산이 필요하다. 단순 호기심과 재미로 SNS 등을 통해 불법촬영물을 돌려보는 자들도 명백한 범죄행위의 공범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는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것을 근절하기 위해 인터넷사업자·웹하드사업자 스스로 자율적인 규제(필터링)를 강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9월 28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웹하드 53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설명회'를 개최했다. 사업자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범죄행위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넷째는 불법촬영물속 주인공인 피해자에 대한 냉혹한 사회적 인식과 시선을 거둬야 한다. 누구나 동영상 속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의도치 않게 피해자가 된 개인은 사회적·제도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고 가정해 보자! 생각만 해도 수치심에 아찔하다. 불법촬영물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성폭력과 같은 신체적 가해 행위 이상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범죄임을 명심해 생산 및 유포하지 말아야 하며, 공범자가 되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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