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화학상 '저온전자현미경'도
연구자3인 업적 절묘한 합작물
노벨물리학상 중력파 관측연구
한국연구진 14명도 공동저자로

하루 24시간에 맞춰 신체를 조절하는 '생체시계'와 살아있는 세포의 분자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저온전자현미경', 우주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알려줄 '중력파'까지 인류 발전에 공헌한 연구성과를 내놓은 9명의 과학자가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의 호기심이 위대한 발견으로 발전한 데는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단골 주연 '초파리'="네 번째 중요한 수상자는 여기 있는 파리입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홀 교수는 지난 2일 노벨위원회의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초파리에게 먼저 감사를 전했다. 홀 교수를 비롯해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교수 등 3명은 생물의 24시간 주기 리듬(서캐디언 리듬)을 제어하는 유전자를 밝혀낸 공로로 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1984년 브랜다이스대에서 함께 일하던 홀과 로스배시 교수는 록펠러대의 영 교수와 함께 초파리의 일종인 사과즙파리(fruit fly)에서 하루의 생물학적 리듬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주기 유전자(period gene)를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주로 초파리의 주·야간 활동성을 근거로 생체 리듬을 연구했고, 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역할을 규명해 시간생물학(chronobiology)의 기틀을 마련했다.

초파리는 인간과 유전자의 60%가 일치하고 기르기 쉬워 암, 자폐, 당뇨 등 많은 질병 연구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 과학자들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질병 유전자의 75%가 초파리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초파리의 유전체는 네 쌍의 염색체만 갖고 있어 유전자의 기능을 살펴보기 위한 실험에 용이하다. 1933년 초파리로 유전 현상에서 염색체의 역할을 규명한 토마스 헌트 모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초파리를 이용한 연구로 최소 6개의 노벨 생리의학상이 나왔다.

◇중력파 관측 한국 연구자들도 한 몫="이 엄청난 발견은 거대한 협력의 결과입니다." 지난 3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킵 손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명예교수는 노벨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앞으로 노벨위원회는 이런 협력 전체에 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킵 손 교수와 라이너 와이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지난 2015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를 실제로 관측하는데 성공한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라이고)를 공동 설립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1순위로 거론돼 왔다. 라이고 설계의 일등 공신이던 로널드 드레버 교수가 올해 3월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 한 자리는 배리 배리시 칼텍 명예교수로 채워졌다. 배리시 교수는 라이고 협력단을 13개국 1000여명의 과학자가 참여하는 거대한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로 궤도에 올린 업적을 인정 받았다.

이 연구에는 한국 연구자들도 힘을 보탰다. 최초의 중력파 검출 성공을 담은 논문에는 이형목 서울대 교수 등 국내 연구진 14명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블랙홀 쌍성이 먼저 관측될 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하고, 중력파 데이터를 분석해 중력파원의 질량과 스핀, 위치 등 주요 물리량을 측정해 정체를 파악했다.

또 라이고 연구단 운영위원과 라이고 펠로우 프로그램 국제 블록 코디네이터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했다. 2003년 자발적 모임으로 시작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에는 현재 약 3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소그로'라는 이름의 초전도 양자센서를 이용한 독창적인 방식의 중력파 검출 실험도 제안하고 있다.

◇결실 마지막 열쇠는 '팀워크'=올해 노벨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은 각각 3명 과학자가 나란히 공동 수상했다. 노벨 과학상은 2000년대 이후 지난해까지 46건 중 42건이 공동 수상이었을 정도로 공동 수상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점차 거대하고 복잡해지는 현대 과학에선 여러 과학자들이 교류하고 함께 연구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올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저온전자현미경도 3명의 연구자의 업적이 절묘하게 합쳐진 결과물이다. 리처드 핸더슨 영국 분자생물학 MRC 실험실 교수는 전자현미경으론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생체시료 관찰에 성공하면서 가능성을 열었고, 요아힘 프랭크 컬럼비아대 교수는 컴퓨터 알고리듬으로 2차원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고해상도 3차원 이미지로 결합하는 전략을 고안해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프랭크 교수가 이미지 처리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완성해 가던 시기에 자크 뒤보쉐 스위스 로잔대 명예교수는 순간적으로 물의 온도를 낮춰 얼음 결정 대신 유리화된 상태로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다. 프랭크 교수는 뒤보쉐 교수의 유리화 기법으로 찍은 이미지를 분석해 리보솜의 3D 구조를 얻어냈고, 원자 수준의 해상도를 구현하겠다는 핸더슨 교수의 집념으로 마침내 기술적 난제를 극복한 저온전자현미경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와 세포의 분자 구조를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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