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곧 추석이다. 집집마다 보름 전부터 차례 상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는다. 그런데 요즘은 직접 장을 보며 식재료를 고르고 나르는 품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인터넷으로 종류, 개수, 산지까지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 일상의 모습도 바꾼다.

얼마 전 대화한 젊은 직원은 의류, 전자기기에 더해 간식에서 칫솔, 면봉 등 오만가지 생필품을 전부 인터넷에서 주문한다고 한다. 옷은 입어보고, 화장품은 발라보고, 음식은 눈으로 확인하고 사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이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인가 보다.

자본주의는 정보통신기술(IT)과 함께 크게 진화하고 있다. 제품을 한 사람이 소유했던 상품경제에서 여럿이 동시에 소유하는 공유경제로, 이제는 '굳이 소유하지 않는' 정기구독경제로 바뀌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공유경제 개념은 '소유'라는 단어의 근간을 본격적으로 뒤흔들었다. 공유경제의 대표 사례인 '쏘카'는 하나의 차를 여럿이 돌아가며 사용하는 사업이다. 숙박 플랫폼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에어비앤비' 역시 '내 방'을 대여해준다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기반이 된 사업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이 '남의 방'에 투숙하는, 이른바 '하우스 셰어링'을 구현했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는 정기구독을 뜻하는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과 전자상거래(e-commerce)의 합성어로써,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이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의 사회에서는 도시락, 화장품, 도서, 생필품, 애견용품까지 신문이나 우유 구독하듯 매달 돈을 내면 가져다준다. 물품의 재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가는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다. 소비자 성향에 맞추어 제품 추천도 해주니 쇼핑에 드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요즘은 음악이나 영화도 다운받지 않고, 애플뮤직이나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추세다. 포토샵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어도비사도 최근 라이센스 구매방식을 버리고 월 이용료를 내면 다양한 기기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클라우드 방식으로 전환했다.

심지어 한 달에 149달러(약 17만원)를 내면 횟수 제한 없이 원하는 때에 이용할 수 있는 병원도 생겼다. 올해 1월 샌프란시스코에 문을 연 의료 시설 포워드(Forward)는 엔지니어가 만들었다. 바디스캐너로 건강을 진단하고 적외선 카메라로 혈관을 찾아 채혈하고, 유전자 분석을 통해 검사자의 발병 위험도를 진단한다. 뿐만 아니라 24시간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상담이 가능하다. 치료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전문 상담 병원이라 하겠다.

정기구독경제 시장은 IT의 발달로 더욱 커질 것이다. 구매자의 소비 성향을 분석하여 '맞춤형' 구매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작은 일에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결정 장애(indecisiveness)'를 겪는 이들에게, 휴일에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려면 몇날 며칠을 발품 팔아야하는 이들에게, 정기구독경제는 단지 결정할 거리를 하나 줄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온·오프라인 상에 정보는 넘쳐나고, 취사선택할 수 있는 보기가 많아지면서 우리의 삶은 편리함과 함께 훨씬 더 복잡해졌다. 정보를 선택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듦은 물론 옵션이 워낙 많으니 계획에 없던 낭비도 늘었을 것이다. 선택에 드는 에너지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앞서 우스갯소리처럼 '결정 장애'라는 말을 썼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다. 현대인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중요한 결정은 음악이나 쇼핑, 식당 외에도 태산처럼 많다.

서브스크립션 커머스가 제안하는 맞춤형 소비는 어쩌면 불필요한 에너지와 소비, 요즘말로 '스튜핏'을 총체적으로 줄여주는 현실적인 대안일지도 모르겠다. 디지털경제시대에 나에게 딱 맞는 소비를 자동으로 대신 해주는 기술의 힘이 손실을 최소화한 저탄소사회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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