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 후퇴해선 안돼

당초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초대형IB(투자은행) 사업이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금융감독원이 돌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중 이란 이유를 들어, 삼성증권에 대한 초대형IB 인가 심사 절차를 보류키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의 주주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이해관계가 큰 특수관계인인 만큼 적격성 심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에 대한 1차 선고가 나올 때 까지 심사업무가 중단된다. 특히, 이 부회장에 대해 징역형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경우, 삼성증권은 초대형IB 사업의 핵심인 어음 발행 사업이 불가능하다. 또한 5년 동안 새로 인가신청도 할 수 없다.

삼성증권의 초대형IB 심사가 전면 중단되면서, 그동안 초대형IB 사업을 준비해 온 나머지 4개 대형 증권사들도 노심초사 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삼성증권에 당초 우려보다 높은 수준의 대주주 적격성을 요구하면서, 초대형IB 사업 자체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그동안 초대형IB 사업권 확보를 위해 각고의 준비를 기울여 왔다. 정부가 제시한 자본금 규모인 4조원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요 증권사별로 사업규모에 비해 과도한 재원을 자본금으로 확충해 왔다. 또한 미래 투자은행 시대에 맞춰, 은행, 부동산, 컨설팅, 글로벌 등 각 분야의 전문인력도 대거 늘려왔다.

삼성증권도 여타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초대형IB 시장진출을 위해 올해 추가로 3000억원을 새로 확보하는 등 초대형IB 사업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금고 이상의 선고를 받을 경우, 삼성증권이 그동안 신사업 진출을 위해 공들여온 준비와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당장, 초대형 IB 인가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힘들게 마련한 자본금 4조원이 오히려 큰 재정적 부담으로 돌아 올 가능성이 커졌다. 초대형IB 신사업 추진을 위해 늘려 온 인력들도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증권업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판단 기준이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해서, 초대형 IB 시장진입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사자인 삼성증권은 물론 현재 초대형IB 승인을 신청한 증권사들도 정부가 어떤 잣대로, 또 어떤 평가를 내릴 지 반신반의 하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의 이번 조치로 초대형IB 출범 자체가 지연되거나, 그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을 까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초대형IB 활성화를 통해, 주식중개 업무를 주로 해온 증권사들이 골드만삭스와 같은 글로벌 투자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겠다고 강조해 왔다. 자본력을 갖춘 국내 금융사들이 이미 포화될 대로 포화된 내수 시장을 넘어,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미개척지에서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의 기조였다.

그러나 그 첫 단추인 인가 심사 과정에서 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정부가 당초 제시한 정책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발굴하기 위한 금융혁신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 금융당국에서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