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후려치기·과업요구 등 갑질 "납품가 99%까지 깎기도" 울분 중소·신생기업 대응 방법 없어 울며겨자먹기식 손해보고 수주 당국, 민간 감독권한 없어 한계
정보기술(IT)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발주 기업들의 횡포가 비일비재하지만 이렇다 할 제재 수단이 없다 보니 업계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강제적인 공급 가격 후려치기나 과도한 과업 요구 등 갑질이 심각하지만 수주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히 없어 중소, 신생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 중소 IT시스템 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20년 경력의 C모 이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대기업,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기업에서 IT기기를 구매하면서 과도한 할인을 요구한다"면서 "적정 발주 가격을 왜곡하는 등 현업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C 이사와 IT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이 입찰공고를 낸 뒤 납품 가격에 할인율을 적용한다. 할인율이란 IT업체에서 입찰 가격에 맞게 견적서를 발주기업에 제출하면 발주기업이 납품가를 깎는 비율을 의미한다. 업계에선 할인율이 60~70% 선에 이른다고 토로한다. 일부 기업은 무려 99%의 수준의 할인율을 요구하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행태는 발주기업 내 구매조직이 내부 평가를 잘 받기 위한 것이라고 IT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C 이사는 "일부러 발주 단계에서 가격을 99% 할인할 수 있도록 입찰가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며 "일례로 기본 100만원 선의 IT제품을 1억원으로 발주해 다시 깎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간기업의 발주 과정은 일반적으로 기업 자체 전자조달시스템 상에서 전자입찰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주 기업의 구매팀은 전자입찰에 참여한 응찰기업의 입찰가를 토대로 별도로 협상을 한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입찰 방식이라면 응찰기업은 응찰하면 끝인데 오히려 구매부서 담당 실무진부터 팀장, 상무, 전무로 점점 올라가면서 가격협상이 수차례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내 모든 기업이 발주 시 할인율을 요구하는 이유는 할인율 자체가 구매팀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C 이사는 "구매팀 직원 평가는 제품이나 시스템 구매 시 어느 정도를 할인했는지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폐단으로 입는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 IT기업에 돌아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저가에 최대한 맞춰 응찰했는데 추가적인 할인요구가 오면 그 자체로 부담"이라며 "황당한 할인율을 요구받고 (사업을) 못한다고도 해봤는데 성의를 보이지 않을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손해를 보고 수주한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이런 할인율 갑질에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자, 전기장비 등 일반적인 기기의 경우 할인에 한계가 있지만, IT시스템 발주의 경우 SW 개발비 등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할인율 폐해가 더 심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밝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IT시스템 발주는 SW 개발이 포함되다 보니 상당 비중이 개발자 인건비가 차지한다"며 "그러다 보니 서버, 스토리지 등 하드웨어(HW) 제품에 비해 훨씬 높은 할인율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도 이 같은 폐해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관리·감독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재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상 공공 소프트웨어 발주와 관련해선 형평성 관리, 공정성 감독 역할이 주어져 있지만, 민간 IT사업에 대해선 감독권한이 없다. 대신 민간 IT 부문은 일반 서비스군으로 묶여 공정거래법상 부당거래행위 부문에서 통제를 받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관계자는 "현재 관련 법 체계상 한계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민간 부문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접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행동을 취할 방법이나 권한은 없는 상황이라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