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태 등 잇단 자질 논란 박기영 과기본부장 결국 자진사퇴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마련 시급
서울대에 이어 고려대도 박기영 신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대한 사퇴 촉구 서명 운동에 착수한 지난 11일 박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나서고 있다. 박 본부장은 이날 퇴근 이후 자진 사퇴했다. 연합뉴스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인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첫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초대 본부장으로 선임된 박기영 교수가 자진 사퇴하면서 초기부터 힘이 빠지는 분위기다.
◇초대 본부장 나흘 만에 '사퇴'…후임 인사 부담=지난 7일 초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된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11일 나흘 만에 자진 사퇴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내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박 교수는 황 전 교수의 조작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2억5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실 등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던 인물이다.
이런 배경을 두고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야권과 과학기술단체는 일제히 박 교수의 자질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비난 여론이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박 본부장은 결국 자진 사퇴했다. 박 교수는 "황우석 교수 연구 조작의 모든 책임이 저에게 쏟아지는 것은 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라며 항변하면서도 거센 사퇴 요구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기혁신본부장 후임 인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부활시켜 국가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타워로 내세운 구상이 박 교수에게서 나온 만큼, 조직을 계획대로 이끌 인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다. 한 과학정책 전문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예산 등 정책 과정을 잘 이해하고 동시에 정치력을 가져야 하는 자리"라며 "능력을 갖추고 과학기술계의 신망을 동시에 받는 인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갈 길 먼 과기혁신본부..과학기술 거버넌스 '타격'=신임 본부장 인선 실패로 타격을 입은 과기혁신본부가 제 역할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는 과학기술보좌관-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과학기술전략본부로 이어지는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축 지연을 불러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등 급속한 기술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과기혁신본부가 강력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갖추고 미래전략 수립과 범부처 통합정책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열린 '과학기술혁신본부에 바란다' 토론회에서 정선양 건국대 교수(기술경영학과)는 "과학기술정책의 목표가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발전, 지속 가능한 발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다부처 간 연계·조정과 통합이 필요하며 이를 지원 할 수 있는 과학기술 거버넌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혁신본부가 국가 미래전략 수립을 수립하고 범부처 통합정책을 기획·추진하기 위해선 연구개발(R&D) 예산권 확보가 시급하다. 예산 권한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R&D 지출한도 공동설정과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 등을 가져오는 게 과제다. 현재 기재부는 이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본부장 공백으로 R&D 예산권 확보에 난항이 예상된다. 정 교수는 "과기혁신본부는 이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됐으나 실질적인 예산 배분권을 부여받지 못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과학기술 예산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의해 전문성에 바탕을 둔 예비타당성 조사와 예산 배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전문가들은 혁신본부 조직 자체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조직개편 당시 혁신본부장에게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등 권한을 줬지만, 막상 이를 뒷받침할 혁신본부 조직은 실장급 직위를 확보하지 못한 비정상적인 구조라는 것.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선임연구위원은 "혁신본부장 아래 국장 3명으로는 타 부처와 정책 조정이나 예산 논의 등을 동등한 위치에서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