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한여름 복 더위가 느껴지는 계절이다. 더위에 지쳐 입맛이 뚝 떨어지면 몸보신을 위한 음식들을 찾게 마련인데 개인마다 선호하는 음식들이 다를 것이다. 그런데 1940~6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할머니 손에서 귀한 음식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남성이라면 이즈음 간절히 생각나는 생선이 있을 법하다. 바로 민어이다. 흔히 삼계탕과 보신탕이 옛날부터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면 조선시대 양반들 사이에서 최고의 보양식은 민어탕이었다.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란 말도 있으니 민어 앞에서는 고급 생선인 도미도 감히 명함을 못내밀 지경.
민어는 맛이 아주 담백하고 비린내가 거의 없다. 그 뽀얀 흰 살은 여름마다 기력이 떨어져 소화력을 잃는 허약한 체질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약이다. 민어는 단백질이 아주 풍부하면서도 지방함량이 낮아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음식이다. 담담하면서도 단맛을 내는 민어를 먹음으로써 더위로 잃은 입맛을 되찾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고추장을 풀은 얼큰한 민어탕을 많이들 찾는다지만 개인적으로 민어는 회맛이 기가 막히다. 핑크빛이 감도는 뽀얀 살결이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지면서 한점 한점 집어 먹을 때마다 바닷속의 신선한 영양분이 입속으로 퍼져드는 느낌이다. 민어회는 고추장 보다는 우리네 된장과 잘 어울리는 생선이다.
회를 뜨고 남은 머리와 몸통은 고춧가루 고추장 풀어 민어탕으로 끓여 먹으면 설탕 한술 넣지 않았는데도 달착근한 향미와 담백한 맛으로 더위에 지친 피로가 한번에 풀리는 기분이 든다. 그런가 하면 도톰한 민어살을 저며 떠서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혀 팬에 기름 둘러 지져낸 민어전은 또 그 맛이 얼마나 귀품이 있는지. 민어전은 어린 아이에게도 권하고 싶고 여름철 고급 술안주로도 좋다. 요즘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생선코너에 가보면 민어가 워낙 비싸다 보니 큰 민어를 부위별로 먹기 좋게 나눠 팔아 식성에 따라 요리해 먹기도 편해졌다. 횟감으로도 잘 포장돼 소량씩 구매 가능하다.
민어는 그 울음소리가 조기 못지않게 특이한데 겨울에는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지내다가 봄이되면 '욱욱' 울어대며 민어떼가 서해로 올라온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민어가 알을 낳는 시기이다. 민어가 예부터 보양식으로 취급받는 이유 중에는 민어의 수명도 한몫한다. 민어의 수명은 10~15년 정도로 몸 길이는 80~100㎝쯤으로 큰 생선에 속한다.
미식가들 사이에 민어회를 최고의 횟감으로 치는 진짜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어 부레 때문일 것이다. 민어회를 한 접시 시켜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때 부레를 제일 먼저 먹는 사람이 바로 '상전'임을 눈치챌 수 있듯이 민어부레는 아주 귀한 음식으로 친다. 대부분의 생선 부레가 식용으로 이용되지 않는 것과 달리 민어부레는 씹히는 질감이나 담백한 맛이 여느 생선과는 다르다. 옛날에는 민어 부레로 질 좋은 풀을 만들기도 하여 값비싼 장롱이나 문갑은 반드시 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였다고 한다.
민어회는 6월에서 8월까지가 가장 제 맛이 날 때다. 민어는 기름진 생선이라 된장과 맛이 어울리는데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는 식초를 듬뿍 넣는 것이 또한 맛있게 먹는 요령. 식초를 넣으면 민어맛이 더욱 쫄깃하고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민어탕을 만들 때는 반드시 애호박을 함께 넣도록 한다. 애호박도 이 때가 한창 단맛이 들어 애호박을 넣고 고추장을 풀어서 끓인 민어탕, 싱싱한 민어를 비늘을 긁어 내고 아가미, 내장을 꺼내어 깨끗이 씻어 토막친 다음 애호박을 먹기 좋은 크기로 납작하게 썰고 대파와 홍고추 청고추는 씨를 털어내고 어슷어슷 썰어 놓는다. 냄비에 물을 부어 끓기 시작하면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어놓고 다듬어 놓은 민어, 애호박, 풋고추 등을 넣고 끓어오르는 거품을 걷어내면서 마늘과 다진 생강, 파를 넣고 식성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끝으로 불을 끄기 직전에 쑥갓을 얹어 내면 맛있는 민어탕이 완성된다. 그 밖에도 식성에 따라 민어는 어채, 어만두를 만들고 조림, 구이, 찜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