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은 신약개발 기간의 약 70%를 차지하는 신약개발의 필수 과정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국가임상시험사업을 통해 십 년이라는 단기간에 글로벌 초기 임상시험까지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냈다. 모두들 놀라워하는 일이다. 세계 제약 R&D 투자는 2015년 약 170조원으로 모든 산업 중 가장 크다. 이 중 50% 이상이 임상시험에 쓰이고 있다. 1970년대에 약물 하나 당 2억 달러 미만이었던 신약개발 비용은 현재는 약 26억 달러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많은 부분이 임상시험 비용의 증가와 임상시험 성공률 저하에 기인한다. 임상시험 비용이 증가하는 이유는 신약 허가당국이 요구하는 데이터의 양과 수행의 복잡성이 증가해 임상시험의 수, 기간, 규모, 투입인원 모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임상시험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보다 신중히 예측하는 새로운 장비나 기술을 이용한 검사들을 도입하는 임상시험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의학과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타깃과 개념을 가진 신약 후보들이 출현하면서, 이들에 대한 임상시험의 비용은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간 약이 신약허가에 이르는 성공률은 10%를 넘지 못하니, 경험이 없고 규모가 작은 제약사에게는 넘기 힘든 큰 산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 세계 제약사 등의 신약 파이프라인은 지난 1월 기준 약 1만5000개에 이르고, 이 중 약 5500개 정도의 약물이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즉, 고위험, 고비용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회사들이 5500개의 약을 가지고 임상시험이라는 산을 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에서 현대적 개념의 신약 임상시험은 지난 1962년 케파우버-해리스 수정안 통과로 시작됐다. 신약 시판허가에 있어 기존에 요구되던 안전성 증명에 추가해 효과에 대한 잘 설계된 대조군 비교임상시험 결과를 내도록 한 것이다. 이 수정안은 특히 임상시험에서의 환자 동의뿐 아니라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GMP)도 의무화했다. 이보다 앞선 1946년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는 결핵환자를 대상으로 스트렙토마이신의 무작위배정 대조군 비교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즉 미국과 유럽은 현대적 의약품 임상시험 경험을 적어도 55년 이상 쌓아왔으며, 미국의 경우 케파우버-해리스 수정안 이후 약 1100개의 신약이 무수한 무작위, 대조군 비교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됐다.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1999년 진행성 위암환자에서의 제2상 후기 임상시험을 거쳐, 최초의 국내개발 신약인 '선플라주'가 허가됐다. 선플라주 개발에는 총 81억원이 소요됐으며 이중 보건복지부가 임상 2상에 10억5000만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이후 18년간 최근 허가된 '베시보정'까지 총 28개의 국내개발 신약이 임상시험을 통해 국내에서 허가됐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제 2차 제약산업육성 중장기전략을 기획 중이다. 이번에 꾸려진 관·산·학 전략기획단이 고민하고 있는 사업안 중에는 국내 제약사의 임상개발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임상시험 인프라 기술 고도화 사업들과, 제약사 등의 임상개발을 직간접 지원하는 내용들이 1차 때 보다 더 많이 눈에 띈다고 한다. 우리나라 신약들도 이제 임상시험의 산을 넘고 싶다는 징후다.
혹자는 "왜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갖고 제약사가 해야 할 일을 지원하는가, 왜 병원 임상시험 인프라와 기술개발을 지원하는가"라고 비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와 현재, 선진국들이 임상시험 인프라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개발 비용이 지금의 십 분의 일도 안되던 시절부터 쌓아진 신약개발 성공과 실패라는 경험과 자본의 맷집을 가진 선수들의 리그에 이제야 들어가야 하는 우리 선수들에게는, 그들과는 다른 코칭과 후원이 필요하다. 그럴 수 없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을 더 스파링 상대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 임상개발 경험의 몇 십 분의 일밖에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가, 글로벌 신약 개발국이 되고자 한다면, 기업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신약개발이라는 대장정에 나설 수 있도록 국가가 마중물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신약개발의 혜택은 제약사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환자가 누리게 된다. 또한 제약 바이오산업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분야이자 미래의 성장동력이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보이지 않는 손에만 기대기에는 너무도 매력적인 분야가 바로 제약·바이오 산업이다.
우리는 이미 코칭과 후원을 통해 세계 1위로 올라선 반도체 산업의 성공경험을 가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연구계가 1980년대부터 30년간을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경험을 살려 제2의 성공스토리를 써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